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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깍두기 아저씨‘가 첨단 달리네···새 옷 입은 ’오프로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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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봤습니다]

중앙일보

전설의 오프로더 디펜더가 새 옷을 입고 한국 소비자를 만난다. 오리지널 디펜더와 많이 달라졌지만, 험로를 가뿐하게 주파하는 성능 만큼은 그대로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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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디펜더는 미국의 지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G바겐과 함께 반세기 넘게 ‘오프로더’(Offroader·도로가 아닌 곳을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안전규제 등의 이유로 한국 시장에 출시된 적이 없었던 디펜더가 마침내 한국 소비자와 만난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오리지널이 아닌 ‘새 옷을 입은’ 2세대 디펜더다. 지난 1일 국내에 공식 출시한 신형 디펜더를 21일 열린 미디어 시승회에서 만났다.



전설의 오프로더, 새 옷으로 갈아입다



1948년 데뷔한 디펜더는 원래 농업용 차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윌리스 MB(지프 랭글러의 전신)에 감명받은 영국인들은 이를 개조해 새로운 다목적 사륜구동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차는 처음엔 ‘시리즈 1’이라고 불렸고 농업용 차량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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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헤드램프와 불룩 솟은 보닛은 오리지널 디펜더의 전통을 계승한 디자인이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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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m가 넘는 전장과 3m가 넘는 휠 베이스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큰 덩치를 자랑한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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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어타이어가 달린 뒷모습은 이 차가 오프로더의 DNA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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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성능을 인정받은 이 차는 영국군의 제식 차량으로 채택되며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리즈 2·시리즈3 등으로 성능이 개량됐지만 각진 차체와 위로 튀어나온 보닛, 그릴 옆의 동그란 헤드램프 같은 기본 디자인은 변하지 않았다. 이후 민수용으로도 출시돼 1980년대 경영난을 겪던 랜드로버의 구원투수가 되기도 했다.

‘디펜더’란 이름을 얻은 건 1990년부터다. 2도어 숏바디 모델은 ‘디펜더 90’, 4도어 롱바디 모델은 ‘디펜더 110’이라고 불렀다. 승용차 시장에 맞게 고급 사양을 더했지만 기계식 사륜구동 장치와 차동기어(험로 주파를 위해 좌우 구동력을 배분하는 장치) 등은 변하지 않았다.

배출가스 규제, 에어백조차 없는 안전장비 등으로 1세대 디펜더는 2015년 단종됐다. 하지만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2세대 디펜더가 화려하게 데뷔했다. 최근 고전 중인 재규어 랜드로버가 내놓은 야심작이다. 1세대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도 최첨단 전자장비가 대거 채용됐다. 디펜더는 럭셔리 RV(레저용 차량) 명가 랜드로버를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전자장비로 가득, 성능은 그대로



시승은 경기 양평군 한화리조트 주변에서 진행했다. 사유지여서 다른 이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유명산, 농다치 등의 산악 코스였는데 지난 장마와 태풍으로 유실된 구간이 많아 상당히 험난한 오프로드 코스였다.

첫인상은 역설적이지만 ‘귀엽다’에 가깝다. 오리지널 디펜더가 ‘깍두기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면 새 디펜더는 모서리를 다듬어 놔 전작의 거친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둥근 헤드램프, 불룩 솟은 보닛 등 전작의 스타일을 계승했다는 주장을 부인하진 못하겠는데, 디펜더 같지는 않다. 외국에선 디자인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프리랜더(단종된 랜드로버의 도심형 SUV)3이냐’는 얘길 하기도 한다.

덩치는 생각보다 크다. 5m가 넘는 전장에 휠 베이스(앞뒤 차축간 거리)는 3m가 넘는다. 후면의 스페어 타이어나 측면의 각진 형태, 커다란 스키드 플레이트(험로 주행 시 차량 하부를 보호하는 덮개)는 이 차가 타고난 오프로더임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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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큰 변화를 줬다. 전자식 계기판과 조작감이 좋은 센터페시아 모니터가 달려 있다. 무엇보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해 다양한 기능을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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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식 기어레버는 ZF의 8단 자동변속기다. 인제니음 2L 디젤엔진을 장착해 240마력을 발휘하는데 수치보다 실제 출력이 더 뛰어나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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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상단엔 쪽창을 만들어 개방감을 살렸다.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한 디자이너들의 센스가 돋보인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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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열리는 테일게이트 역시 오리지널 디펜더와 같다. 넒은 거주공간과 적재능력은 디펜더의 장점이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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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말 그대로 환골탈태했다. 간결하다 못해 휑했던 오리지널과 달리 12인치대 디지털 계기반과 10인치의 센터페시아 모니터가 달렸다. 프레임(뼈대) 차체였던 전작과 달리 모노코크(뼈대 없이 하부 위에 차체를 씌운 형태) 차량이지만, 일반 승용차와 달리 오프로드를 견딜 수 있는 강성을 지녔다는 게 랜드로버 측의 설명이다.

‘오프로더 명가’ 답게 환경에 따라 전자식으로 조절되는 서스펜션(바퀴의 현가장치)과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은 어떤 지형이라도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실제로 25도에 가까운 등판각(경사)이나 깊은 구덩이, 높은 바위를 지날 때 바퀴 두개가 허공에 뜬 상황에서도 구동력을 배분해가며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반 도로 주행은 물론 눈길·진흙길·바위·모래와 도강 모드 등으로 이뤄진 주행 기능은 신뢰감을 줬다. 오리지널에 비해 편해진 승차감과 터치식으로 조절할 수 있고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 각종 디스플레이 모니터 덕분에 편의성은 대폭 높아졌다. 차량 아래와 주변의 지형을 투과해 보여주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도 장애물을 눈으로 보듯 비춰줘 편리했다.



기계장치에서 컴퓨터로 진화



새 디펜더는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차량의 기본 구조)인 EVA 2.0을 적용해 85개나 되는 컨트롤 유닛(작은 컴퓨터 장치)이 작동한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모바일 AP가 달려 ‘하나의 컴퓨터’처럼 작동한다. 테슬라에서 흔히 봤던 것이지만, 테슬라가 강력한 성능의 시스템온칩(SoC) 하나로 차량을 제어한다면 디펜더는 기능별로 낮은 성능의 프로세서 수십 개가 달린 형태다.

여기에 LTE 모뎀 2개를 탑재해 스티어링, 브레이크, 엔진 등 16개의 개별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무선 업데이트(OTA·Over the Air)한다. 역시 테슬라만큼은 아니지만, 기존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들이 내비게이션 등 일부 기능만을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일반 도로 주행을 위해 첨단 운전자 보조기능(ADAS)도 담았다. 6개의 카메라와 12개의 초음파 센서, 4개의 레이더를 장착했다는데, 앞 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정해진 속도로 주행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기능이 달린다. 차선을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반자율 주행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차선을 벗어나는 걸 막는 정도다.

악명 높던 전장 장비는 확실히 좋아졌다.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낮고 반응이 느리거나 자주 고장 났던 재규어 랜드로버의 전장 장비는 LG전자와 협력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10인치대의 다소 작은 센터페시아 모니터지만, 해상도가 높고 빛이 비쳐도 잘 보인다. 반응 역시 훌륭한 수준이다. SK텔레콤과 공동 개발한 T맵 내비게이션도 훌륭하다.

다만 시승 도중 센터페시아 모니터의 주행모드 표시가 되지 않는 상황이 생겼다. 계기반에 정보가 표시되긴 했지만, 랜드로버의 전장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부분은 개선하길 바란다.



이 차를 살 것인가



한국 시장엔 4도어 롱 바디인 110 모델만 출시한다. 가격은 8590만~9180만원인데 럭셔리 RV를 표방하는 업체답게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하지만 일본 오프로더나 지프로 오프로드 주행을 하는 동호인들은 사제 오프로드 장비에만 꽤 많은 돈을 쓴다. 좋은 기능의 오프로드용 순정 장비를 기본 장착했다는 점에서 지갑을 열 만한 가격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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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디펜더가 오리지널 디펜더의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2018년 랜드로버가 한정 판매한 70주년 기념 오리지널 디펜더.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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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리지널 디펜더 90모델로 초원을 달린 적이 있다. 사막에 가까운 모래부터 암석으로 가득 찬 구간까지 디펜더의 매력은 어마어마했다. 다시 만난 ‘전자식 디펜더’ 역시 성능은 오히려 업그레이드됐다. 하지만 군데군데 녹슬고 리벳이 그대로 드러나 있던 오리지널의 아우라는 사실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의 향수에 매달리는 건 기자 같은 '아재'뿐일 게다. 전자장비로 무장한 새 디펜더는 분명 매력적이다. 오프로드를 사랑하는 운전자라면 ‘드림 카’가 될 수도 있다.

양평=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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