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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伊 의석 ‘3분의 1’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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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회의원 감축안, 70% 찬성으로 국민투표 통과

이탈리아가 국회의원 숫자를 3분의 1 이상 줄이는 의회 개혁에 성공했다. 비대한 의회의 비효율을 줄여야 한다며 상·하원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고, 국민투표에서 약 70%의 동의를 얻어 확정됐다.

조선일보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20일(현지 시각) 의회 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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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 시각) AFP통신에 따르면, 20일부터 이틀간 실시된 이탈리아의 의회 감축안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찬성 69.4%, 반대 30.4%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상·하원 의원 숫자가 각 36%씩 줄어들게 됐다. 상원은 315명에서 200명으로, 하원은 630명에서 400명으로 줄어든다. 2023년 치러질 다음 총선부터 적용된다. 이로 인해 5년간의 의회 임기 동안 세비(歲費)를 중심으로 모두 5억유로(약 6850억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의회가 스스로 의원 숫자를 줄이는 개혁을 이뤄낸 건 전례가 드물다.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헌법 개정 사안이라는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유권 해석에 따라 이번 국민투표가 실시됐는데 투표율이 54%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 와중이란 점을 감안하면 제법 높은 투표율이다. 의회 개혁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열망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원내 1당인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은 “역사적인 성취”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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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3일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하원의사당인 몬테치토리오 궁에서 열린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 취임식에 하원의원들이 참석해 있다. 1층에 있는 의장단석을 중심으로 600여 명의 의원이 빙 둘러앉아있다. 이탈리아는 21일(현지 시각) 상·하원 의원 숫자를 각각 36%씩 감축하는 의회 개혁안을 국민투표에서 찬성 69.4%로 통과시켰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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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내각제인 이탈리아가 의회 개혁에 나선 이유는 의회가 비대해서 생기는 병폐가 ‘이탈리아병(病)’의 시발이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1948년 개헌으로 현재의 의회 체제를 마련했다. 2차 대전 전범(戰犯)인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입법부 견제 기능을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큰 의회’를 지향했다. 그래서 의원 숫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민 10만명당 국회의원 숫자(상·하원 합계)를 보면 이탈리아가 1.56명으로 독일(0.8명), 스페인(1.32명), 프랑스(1.42명)보다 많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의회 기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상원과 하원이 동일한 입법 권한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의원내각제 국가가 하원 중심으로 운영하고 상원은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것과 달리 이탈리아에는 실질적으로 하원이 2개 있는 셈이다. 이를 ‘완전 양원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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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규모가 방만한 데다 의회 2개가 양립해 있다 보니 병폐가 쌓였다. 정쟁이 끊이지 않았고, 정당의 이합집산도 빈번했다. 2000년 이후 이탈리아는 총리가 9번 바뀌었다. 같은 기간 독일은 한 번, 영국은 4번 총리가 교체됐다. 의원이 많다 보니 마피아의 이권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나타나는 등 부정부패도 심각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지수(2018년)에서 이탈리아는 180국 중 53위로 영국·독일(공동 11위), 프랑스(21위)보다 훨씬 낮았다.

의회의 고질병을 고치려는 시도는 꾸준 이뤄졌다. 이탈리아가 의원 감축을 시도한 것은 1983년 이후 이번이 8번째다. 앞선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7전 8기’인 셈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15년 마테오 렌치 당시 총리가 상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상원 입법권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다. 의원 숫자를 줄이는 동시에 ‘완전 양원제’도 중단시켜 사실상 단원제 국가로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이 방안은 상·하원을 통과했지만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이번 개혁은 완전양원제는 유지한 상태에서 의원 숫자만 줄인 것이다. 일종의 절충형 개혁을 통해 의회 개혁의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의원 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복잡한 의회 제도 때문에 의원 정원이 계속 늘어나는 독일에서는 연정(聯政)을 구성하는 정당 3개가 현재 709석인 하원 정원이 늘어나지 않도록 막고 장기적으로 의원 숫자를 줄이자고 지난달 합의했다.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전체 의원의 25%가량을 줄이는 방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향후 의회 통과 및 국민 투표가 필요하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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