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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조달 추진에 입찰 진통… 정부백신 유통 경험 없는 업체 계약

글자크기

[독감백신 무료접종 중단]

백신 유통구조 허점 ‘예고된 사고’, 공급 단가 낮아… 제약사들 손사래

4차례 유찰되다 지난달에야 낙찰… 2~8도 저온상태 유통이 원칙인데

상온 노출… 종이박스 운반 의혹도, 촉박한 일정탓 관리부실 가능성

당국, 2주간 검사뒤 재개여부 판단… 업체 “배송물량 많아 생긴 실수”

동아일보

유통 과정의 문제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예방접종이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공공 백신 공급 과정의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증상이 비슷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트윈데믹(twindemic)’을 막기 위해 독감 무료 접종 대상을 크게 늘린 정부가 백신 공급을 너무 촉박하게 추진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만 13∼18세를 대상으로 한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하루 앞둔 21일 오후 백신 유통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백신을 제약회사에서 받아 전국의 각 병의원과 보건소로 전달하는 유통업체인 신성약품이 백신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적정 보관 온도를 제대로 유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독감 백신은 빛이 차단된 상태로 2∼8도 온도에서 냉장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다. 독감 백신을 상온과 같은 높은 온도에 장시간 노출하면 단백질 함량이 낮아지면서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 상온 노출에 종이상자로 배송

보건당국 조사 결과 신성약품이 백신 배송을 위탁한 업체가 백신이 담긴 상자를 옮기면서 냉장차의 문을 열어두거나 상자를 한동안 상온에 노출시킨 정황이 일부 확인됐다. 신성약품이 공급하는 물량은 국내 총공급물량 2964만 도스(dose·1도스는 1회 접종량) 가운데 국가 확보 물량 전량인 1259만 도스다. 일부 의사는 이 업체가 냉동 보관이 가능한 아이스박스가 아닌 일반 종이상자에 백신을 넣어 운반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일부 회원이 독감 백신을 종이상자로 받았다고 전했다”며 “수령인이나 수령 일시를 사인해야 하는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설대우 중앙대 약대 교수는 “독감 백신은 보관과 운송 모두를 냉장 상태에서 하게 돼 있다”며 “모든 의약품은 보관하라는 규정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생물학적제제(백신) 제조·판매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냉동·냉장차량으로 수송 시 별도의 냉각용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냉장 온도를 내내 유지하기 쉽지 않은 경우에는 플라스틱 상자나 스티로폼 등 단열재 상자를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플라스틱 상자에서는 5∼6시간, 스티로폼 상자에서는 10∼11시간 10도 이하 온도가 유지될 수 있다.

신성약품 측은 정부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배송 과정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됐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백신 품질이 변질될 정도로 긴 시간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배송기사가 배송 계획을 점검하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우고 짐을 재정돈하면서 일부 박스를 땅에 내려놨던 것이 보건당국에 신고가 된 것 같다”며 “몇 분이 채 안 돼 백신 품질이 변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전국에 2만 곳 넘게 배송을 해야 하니까 일정이 빡빡했다”며 “배송 물량이 많다 보니 그런 실수가 생긴 것 같다. 결과적으로 우리 직원들이 가서 (위탁) 배송 직원들이 그런 일 못 하게끔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는 이 업체가 이미 공급을 마친 500만 도스 중 일부 샘플을 뽑아 2주간 배양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샘플 검사에서 백신에 문제가 없는 것이 확인되면 곧바로 무료 접종을 다시 시작하고 남은 국가 물량에 대해 새로운 배송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백신이 변질된 것으로 확인되면 폐기할 수밖에 없어 추가 물량 확보 등의 문제가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 유통업체 연속 유찰로 배송 일정 촉박 지적도

이번 사태를 두고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코로나19 방역 혼란을 막겠다며 백신 무료 접종 대상을 크게 늘리면서도 백신 공급단가를 올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 선정이 늦어지면서 백신 운송 일정이 촉박해졌다는 것이다. 올해 독감 백신 유통업체 선정은 두 달에 걸쳐 4차례 유찰 끝에 5차에서 겨우 낙찰됐다. 정부가 무료 접종 백신을 3가 백신보다 더 비싼 4가 백신으로 바꾸면서 입찰단가는 크게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조달 입찰가는 8790원으로 시중 가격에 많이 못 미친다. 지난해 서울의료원 및 서울시 산하 의료기관 4가 백신 입찰가는 1만800원이다. 접종 시작을 불과 한 달 앞둔 8월에야 업체가 결정되면서 촉박한 일정을 맞추려다가 배송 위탁업체 관리·감독 부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여러 유통업체가 입찰에 나섰지만 제약사가 공급에 응하지 않았다. 유통업체가 선정돼도 제약사가 유통업체에 물량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해야 최종적으로 낙찰될 수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백신은 전반적으로 물량 자체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믿을 만한 업체라고 생각해야 물건(백신)을 내준다”며 “신성약품이 마진을 낮게 불렀다기보다는 굉장히 큰 유통사여서 선정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백신을 조달했던 업체들이 입찰방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 때문에 제조사들이 공급계약을 꺼린 것도 신성약품이 낙찰을 받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약품이 국가 백신 조달사업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지 image@donga.com·이소정 기자

전남혁 인턴기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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