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이낙연보다 김종인 먼저 찾는 박용만…그에겐 아군 없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오전 국회를 찾았다. 정치권이 현재 논의중인 이른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과 관련, 재계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통상 재계는 진보정당에 가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읍소·설득한 다음, 보수정당에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게 통상의 '패턴'이었다. 보수정당에는 딱히 길게 말하지 않아도 기업의 어려움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일종의 '내편'이란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날 박 회장이 먼저 찾은 곳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무실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은 10분 만에 끝났다. 박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김 위원장은 면담 후 기자들에게 “박 회장의 경제인 나름의 우려를 들었다”며 “나는 우리가 한국 경제에 큰 손실이 올 수 있는 법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전향적인 자세를 원했던 박 회장의 바램과 달리 이날 김 위원장은 원론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화상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계가 김 위원장 입장에 유독 촉각을 세우는 건 그의 발언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잇따라 “상법과 공정거래법이 전반적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14일) "개정된 당 정강·정책과 모순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17일) “정부가 낸 법안이라고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다”(20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각종 규제법안에 반기를 들어야 할 보수정당 대표가 동조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표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재계는 '기업규제 3법'이 해외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 간섭을 제도화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 고발이 없더라도 검찰이 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기업 운영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기업규제 3법은 사실 176석 거대 여당의 단독 입법으로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야당마저 동조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자 김 위원장을 겨냥해 '보수의 배신'이란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특히 기업규제 3법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은 그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도 있던 내용이다. 그는 이날도 기자들에게 “나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 관련해 공약을 만든 사람이다. 그때는 지금 법안보다 더 강한 공약을 만들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최근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연달아 도왔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아쉬움이 비중있게 담겨 있다. 그는 전날 당 비대위 비공개회의에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이한구 전 원내대표 등을 언급하며 “경제민주화 법안에 반대했던 그들이 지금 어떻게 됐느냐”며, 보수 진영이 듣기에 불편한 지점을 직격했다. 김 위원장 측 인사는 “이번이 그가 경제민주화에 도전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더욱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22일 국회를 방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기업규제 3법' 동조론은 당내 노선 투쟁으로 확대하고 있다. 당장 주호영 원내대표부터 “당 정책위를 중심으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의견을 정리해나가겠다”며 간접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 출범 직후 기본소득 이슈 등을 띄웠을 때부터 "위장 보수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을 가졌던 당내 현역 사이에선 “좌파 2중대 흉내 내기”(홍준표) "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정당답게 행동하라"는 공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규제 3법'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김 위원장의 리더십은 물론 향후 보수진영 대선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는 관측이다.

중앙일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박 회장은 이날 오후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20분간 면담을 했는데, 처음 10분은 공개 발언을 하는 식으로 포토타임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토론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고 이 대표는 “경제계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치겠다. 다만 경제계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현일훈·김홍범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