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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략무기된 슈퍼컴, 日이 한국의 20배 성능… “반도체 집적도 1000배↑·코로나 신약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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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 도입 ‘누리온’, 국내 최고·전세계 17위 성능
日 자체개발 ‘후가쿠’ 1/20 성능… 1.5조 VS 900억
슈퍼컴 규모, 美·中의 1~3%… "향후 무기화 전망"
"에너지·신소재 등 산업 경쟁력 핵심… 경쟁력 요구"

조선비즈

우리나라 최고·전세계 17위 성능 슈퍼컴퓨터 ‘누리온’./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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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가 단순한 연구수행 도구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무기’가 된 만큼 더 많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실무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국가 보유 슈퍼컴퓨터의 최고 성능과 예산 투입 규모 모두 20여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일본은 1조 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현재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후가쿠(Fugaku)’를 자체 개발해 보유 중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900억여원을 들여 자체 개발 대신 미국 업체로부터 도입한 ‘누리온’을 보유하고 있다. 누리온의 연산 성능은 지난 6월 기준 전세계 17위를 차지했다. 1위 후가쿠와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이다. KISTI는 작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의 31.6%인 반면 국가 슈퍼컴퓨터 총 성능은 3.6%, 대수는 10.3%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슈퍼컴퓨터 관련 투자 규모뿐만 아니라 GDP 대비 예산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도 정상급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전체 슈퍼컴퓨팅 성능은 지난 6월 기준 미국이 가장 앞선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3% 수준이다. 중국은 가장 많은 226대의 국가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3대를 가진 우리나라는 이것의 1.33%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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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전세계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들. 최근인 지난 6월 기준으로는 일본의 후가쿠가 1위를 기록했다./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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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민선 KISTI 슈퍼컴퓨팅응용센터장은 "현재 많은 정부와 기업이 슈퍼컴퓨터를 전세계 연구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무기화시킬 것"이라며 "전략무기라는 관점에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필적할 만한 모델을 만들어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효과가 없지만, 정밀계산 능력이 나날이 높아지는 슈퍼컴퓨터가 앞으로 단순한 연구수행 도구를 넘어 안보·경제·국민건강 등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가 경쟁력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희윤 원장도 "2년전 가동한 누리온이 많은 성과를 냈지만 우리가 갈길은 아직 멀다"며 "(사회의)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데이터 기반의 문제 해결이 필요해지고 있다. 슈퍼컴퓨터 역량이 국가적으로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메모리 집적도 1000배 향상 소재·항암 新치료법·고효율 수소 생산 촉매 등 성과

누리온은 2018년 12월부터 본격 가동돼 이날까지 61억 시간 동안 163개 연구기관 소속 3037명의 연구자들이 437만건의 작업을 수행해왔다. 1초에 2경 5700조번 연산할 수 있는 25.7페타플롭스(PF)의 연산속도를 자랑한다. 2018년 퇴역한 4호기와 비교하면 연산을 수행하는 코어 수가 45배 많아졌다. 지난 2년간 반도체·의료 등 여러 분야의 연구개발(R&D)에 기여해 총 275편의 논문을 생산했다. 지난 상반기부터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KISTI는 전날 오전 서울 광화문 HJ 비즈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성과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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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광화문 HJ 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KISTI 기자간담회 현장. 염민선 슈퍼컴퓨팅응용센터장이 앞에 나서서 발표하고 있다./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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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분야에서는 메모리 집적도를 현재보다 1000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신소재를 찾는 연구에 기여했다. 이준희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연구팀은 누리온을 활용해 ‘산화하프늄’이라는 분자에 들어있는 산소 원자에 전압을 가하면 ‘원자간 탄성’이 사라져 집적도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간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최선 이화여대 교수와 이정원 서울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누리온을 통한 분자모델링 연구로 ‘TM4SF5’ 단백질과 ‘아르기닌’의 결합 방식을 찾았다. 아르기닌은 간암세포이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이다. 연구팀은 아르기닌과 TM4SF5의 결합을 억제해 아르기닌이 제역할을 못 하도록 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 지난해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발표했다.

코로나19 관련해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 약물 2만여종을 누리온으로 스크리닝해 현재 50여종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KISTI는 한국화학연구원·서울대와 이들 약물의 코로나19에 대한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검증을 통과한 약물들은 본격적인 약물재창출 연구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6월에는 미국 정부와 IBM에 주도하는 국제 코로나19 컨소시엄에 42번째로 참여, 후가쿠 등 전세계 슈퍼컴퓨터들과 함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구조와 특성 규명, 치료제와 백신 개발, 확진자 진단과 추적 등의 연구를 수행 중이다. KISTI는 이같은 국내외 연구내용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연구현황이나 중간성과를 아직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소 연료 생산 효율을 현재보다 17배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촉매 개발 연구에 활용됐다. 김광수 UNIST 교수 연구팀은 백금(Pt) 촉매를 낱개의 원자 수준으로 분산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하고, 누리온을 활용한 ‘밀도범함수이론(DFT)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촉매의 구조를 파악했다. 수소 생산에 필요한 백금 촉매의 표면적을 최대한 넓히는 구조와 그 효과를 규명한 것이다. 연구성과는 지난 4월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게재됐다.

신소재 분야에서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를 줄일 흡착제 물질을 찾았다. 이정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 연구팀은 누리온을 통한 양자 계산을 통해 이산화탄소 포집에 효율저인 금속유기골격체(MOFs)의 구조를 찾고 그 효율을 측정했다. MOFs는 많은 구멍을 갖고 있는 격자 구조의 물질로, 구성 원자와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연구팀은 암모니아의 수소 원자를 탄화수소로 바꾼 ‘아민’이 이산화탄소 저감에 효율적임을 밝혀냈다. 연구성과는 지난 7월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그외 우주 등 기초과학 분야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분야 성과도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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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온을 활용한 양자계산으로 밝혀낸 이산화탄소 포집 시 MOFs의 구조 변화./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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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센터장은 "현재 예산 확대, 후속 모델의 자체 개발 등 국가 슈퍼컴퓨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KISTI는 누리온의 후속으로 6호기 슈퍼컴퓨터 개발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추진 계획은 향후 관계부처 협의와 예산 편성을 거쳐 정해진다. 누리온처럼 해외 제품을 도입할지, 자체 개발을 할지도 협의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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