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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번엔 검은돈 2300조 돈세탁 파문…도이체방크 8.7% 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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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보고서

버즈피드·국제탐사기자협회 2100건 공개

1999~2017년 국제 2조 달러 수상한 거래

도이체방크 62%, 1조3000억 달러로 최대

日올림픽 유치, IOC 위원 금품 로비 정황

"은행, 의심거래 신고 처벌 면죄부로 활용"

중앙일보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버지니아 청사 입구. 미국 인터넷 미디어 버즈피드와 국제탐사보도기자협회(ICIJ)는 1999~2017년 2조 달러(2300조원) 이상에 다르는 글로벌 은행들의 수상한 거래 신고 보고서 2100건을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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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형은행들이 러시아·북한·탈레반 등의 범죄자금 2300조원을 돈세탁했다."

미국 인터넷매체 버즈피드가 지난 20일(현지시간) 1999~2017년까지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의 의심활동보고서(SARs) 2100여건을 입수해 이같이 폭로하자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JP모건체이스·도이체방크·HSBC·스탠다드차타드(SC) 등 세계적인 대형은행들이 러시아 범죄조직에 계좌를 개설해주거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자금을 세탁하는 데 도움을 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21년 도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세네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아들에게 5억 4000만원 상당 금품이 오간 것도 이들 은행의 이상 거래 신고로 드러났다. 18년간 수상한 거래 금액은 모두 2조 달러(2300조원)를 넘는다.

거론된 은행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21일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장중 8.7%, HSBC 6.2%, SC 5.8%가 각각 폭락했다. 뉴욕증시에서도 JP모건체이스 4.2%, 골드만삭스·시티그룹·뉴욕 멜론은행 3%씩 떨어졌다. 도이체방크는 유출된 핀센 파일 보고서의 62%, 금액으론 1조3000억 달러의 수상한 거래를 도운 것으로 나타났다.

버즈피드의 핀센 파일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은행들은 금융부정 행위로 처벌받거나 거액의 벌금을 낸 뒤에도 검은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은 전 세계에 걸쳐 국제 스포츠계에서 할리우드 연예 산업, 호화 부동산에서 스시 노부 고급 스시 레스토랑 체인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중앙일보

미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가 20일 공개한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의심활동보고서 중 다단계 금융사기업체 WCM777 관련 신고보고서[버즈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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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건으로는 JP모건체이스가 2014년 8월 스위스 귀금속 거래업체 MKS의 3350억 달러(약 390조원)에 달하는 10여년간 거래내용을신고한 게 최다 액수였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위한 자금 세탁으로 나중에 기소된 두바이 소재 기업인 알 자루니 환전소를 위해 자금을 이동해줬다. 알 자루니가 SC 고객이던 동안 탈레반 민병대는 시민과 미군을 살해했다.

HSBC 홍콩지점은 2013~2014년 3개국이 영업을 금지한 'WCM777' 다단계 유사수신업체 자금 1500만 달러의 이체를 허용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업체의 사기 행각에 주로 라틴계와 아시아 이민자들이 최소한 8000만 달러의 피해를 봤다. 이 업체 소유주는 투자자들에게 훔친 돈으로 골프장 2개, 650㎡ 넓이의 저택, 39.8캐럿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샀다.

뱅크오브아메리카·시티뱅크·JP모건체이스·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은 인터폴이 뇌물수수 등 혐의로 적색수배한 카자흐스탄 부패 정치인 빅토르 흐라푸노프 일가의 돈 수백만 달러를 거래를 처리해줬다.

HSBC는 2012년 미얀마·수단의 마약 밀매업자의 돈세탁을 허용해 19억 달러의 벌금을 두들겨 맞는 역사적 위기에 직면했지만 이후에도 마약왕들의 돈세탁을 담당하는 파나마 무역회사를 고객으로 둔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건체이스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때 세계 최대 금융 사기범인 버니 메이도프의 주거래 은행이다가 17억 달러 벌금을 맞았지만, 러시아 마약밀매와 청부살인으로 유명한 범죄자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과 연계된 기업들과도 수천만 달러를 거래했다.

버즈피드는 2만2000여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입수한 뒤 국제탐사보도기자협회(ICIJ), 88개국 100여개 언론사와 함께 1년여에 걸쳐 20만건의 거래명세를 추적했다고 한다.

미 재무부는 성명에서 "승인받지 않은 보고서 폭로는 사법당국의 수사를 위태롭게 하고 미국의 국가안보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범죄"라고 반발했다.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 법무실장은 "보고서 폭로가 은행들의 자진 신고를 꺼리게 만들 수 있다"며 "이는 수사당국이 인신매매와 아동 착취, 사기, 부패, 테러 및 사이버 범죄의 저지하는 데 단서를 확보하는 것을 줄일 것"이라고도 했다.

버즈피드는 지난해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가 신고받은 의심거래 보고 건수만 200만건 이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 은행들은 당국에 대한 의심활동 신고를 실제 범죄조직으로 의심되는 고객과의 거래는 계속하면서 감옥행은 면죄 받는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JP모건체이스는 2013년 말 우크라이나 거물 정치인의 로비스트 겸 돈세탁을 도왔던 폴 매너포트의 회사 계좌의 1000만 달러 이상을 의심 거래라고 신고했다. 매너포트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장이 됐고 2018년 불법 해외로비와 은행·세금 사기 혐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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