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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목 앞두고 물건 가득 채웠는데… 기가 막힐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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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청과물시장 큰불… 상인들 망연자실

새벽에 화재… 인명피해는 없어

상가·창고 20곳 태워 손실 막대

코로나·태풍 등 이어 또 불행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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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된 점포에 ‘하염없는 눈물’ 2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수습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 상인이 타버린 점포와 물건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마스크로 닦고 있다. 연합뉴스


“그나마 추석 대목이라 장사가 좀 될까 싶어서 물건들을 갖다 놨는데, 이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죠.”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시장에 터를 잡고 40여년간 과일 장사를 이어온 정대섭(70)씨는 21일 새벽 시장 일대를 집어삼킨 큰불로 인해 타버린 점포와 과일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화재 현장에서 만난 그는 소방당국의 잔불 진화로 연기가 자욱한데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정씨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판매할 물건들이 시골(거래처)에서 싹 다 올라왔는데, 전부 불로 인해 팔지 못하게 됐다”며 “불에 타지 않은 과일들도 물이 뿌려지거나 연기 냄새가 나서 쓰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청량리 청과물시장과 전통시장 내 상가 및 창고 20곳을 태운 이날 화재는 추석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탓에 피해가 더 심했다. 정씨는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웠는데, 정말 답답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오전 4시30분쯤 청량리 전통시장 내 한 점포에서 발화한 불은 7시간여 만에 인명피해 없이 진화됐지만, 상인들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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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안 본 과일 옮기는 상인들 2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수습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상인들이 불타지 않은 과일박스를 옮기고 있다. 이제원 기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상가 바로 맞은편에서 점포를 운영한다는 최모(62)씨는 “추석 장사를 위해 사과를 잔뜩 받아 놓았는데, 연기에 다 노출돼 어디에다 팔지는 못할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 상인은 과일들이 어지럽게 늘어진 새까만 점포 내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포장에 쌓여 그나마 성한 머스캣과 복숭아 등을 점포에서 꺼내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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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서울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소방관들이 무너진 시장 건물 지붕 위에서 잔불을 진화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인근 상인들은 올해 코로나19로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데 불행이 겹쳤다고 탄식했다.

과일 상인 김좌환(52)씨는 “올해는 코로나19로 경기도 어려운 데다 장마·태풍 때문에 작황까지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물건이 줄어 과일값은 올랐지만 (상품의) 상태는 안 좋은데 비싸니까 팔리지도 않는다. 피해 상인들은 이번 장사는 글렀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영화 청량리청과물시장상인회장은 “(상인들이) 창고 안에 넣어놨던 비싼 수입 과일들도 모두 타버리는 등 피해가 막대하다”며 “현재로선 수십억원대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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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 안 피해 점포에 과일들이 널부러져 있다. 이제원 기자


이번 불로 피해를 본 한 상인은 “화재에 대비한 보험을 하나도 들지 않았다”며 “보상이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날 소방청이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에게 제출한 전통시장 화재사고 현황(피해액 100만원 이상)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최근 5년간 총 92건으로, 재산피해액만 약 1279억원에 달한다. 전국 전통시장 1665곳 중 709곳(42.6%)의 화재안전등급이 C등급 이하이며, 화재 발생이나 가스누출 등을 감지하는 ‘화재가스감지센서’ 설치율은 85.5%, 경종 등으로 화재 발생을 알리는 ‘자동화재속보설비’ 설치율은 54.6%에 그쳤다. 그나마 이번 화재는 시장 내 설치된 화재 알림 장치로 소방당국에 일찍 신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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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피해 상인이 화재 점포를 살펴보고 있다. 이제원 기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오전 현장을 방문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화재가 발생해 제수용품 등을 판매할 수 없어 생업에 막대한 지장이 예상된다”며 “임시판매시설 설치와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등 상인들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현장 공무원들에게 당부했다.

서울시와 동대문구청은 피해 상인들의 화재보험 가입 여부를 조사하고, 피해 지원 방안 및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섰다. 소방당국은 22일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강진·이종민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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