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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로 덮인 두 구의 주검이 5·18항쟁의 분노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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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5·18…’ 저자 노영기 교수

집담회에서 책 집필 동기 설명

“밝혀지지 않은 발포 명령권자

군 자료 대부분 조작돼 분석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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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기 조선대 교수가 18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에서 열린 ‘5·18 집담회’에 참석해 ‘왜 군은 국민에게 총을 쏘았나’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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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죽음의 의미가 생각지 못한 파문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1980년 5월21일 새벽 태극기로 덮인 채 옛 전남도청으로 향하던 두 구의 주검이 그렇습니다.”

21일 노영기(53) 조선대학교 교수는 “제주 4·3사건(학생 희생자들), 4·19혁명(김주열), 6월항쟁(박종철)을 살펴보면 모두 죽음에 대한 저항이었다. 5·18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다. 5월20일 광주역 앞에서 일어난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 때 희생된 사람들은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10만명을 옛 전남도청으로 모이게 했다”고 말했다.

2005~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한 노 교수는 당시 접했던 방대한 군 기록 등을 바탕으로 올해 5월 <그들의 5·18: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푸른역사)를 펴냈다. 지난 18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월례집담회 발표자로 나선 노 교수는 “대학 1학년 때인 1987년 5월 광주 남동성당에서 열린 5·18 사진전을 보고 충격받았다” “군 자료를 중심으로 군인들이 왜 국민을 폭행하고 발포했는지 추적했다”며 책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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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교수는 5월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뒤, 5월20일 밤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 집단 발포로 허봉씨, 김재화씨 등 2명이 희생되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5·18 첫 민간인 사망자는 구타로 인해 숨진 김경철씨였지만, 광주시민들이 5월21일 새벽 태극기에 덮인 채 수레에 실려 금남로로 나온 허씨 등의 주검을 목격한 뒤 “더는 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결국 군은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금남로에 모인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했고 시민군은 무장봉기로 맞섰다.

노 교수는 “다만 사북사태나 6월항쟁과 달리 광주만 발포 명령권자나 문서가 밝혀지지 않았다”며 “군 자료는 더 발굴되겠지만 대부분 조작돼 분석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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