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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고비용·저효율 국회 줄여라" …이탈리아, 의원 3분의 1 감축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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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국회의원 수를 3분의 1이상 줄이는 개헌안을 놓고 국민투표에 들어갔다.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의회를 대폭 축소해 정치개혁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초유의 시도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20일(현지시간) 7개 주 동시 지방선거와 함께 의원 수 감축을 위한 개헌안 국민투표를 시작했다. 투표는 21일 오후 3시까지 이틀간 진행되며 결과는 22일 오후 늦게 나올 예정이다.이탈리아 정부에 따르면 첫날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 4641만5806명 가운데 39.4%로 집계됐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은 국회의원 정수 삭감안이 통과하느냐다. 의원 수 삭감안이 국민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 찬성을 얻어 가결되면 다음 총선(2023년)부터 하원은 630석에서 400석으로, 상원은 315석에서 200석으로 각각 36%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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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20일(현지시간)부터 이틀 간 상하원 의원 수 감축을 위한 국민투표를 진행한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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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측 "고비용·저효율 의회 구조 개혁 첫걸음"



의원 감축은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한 축인 반체제 정당 '5성 운동'이 2018년 총선에서 내건 주요 공약이다. 세금 낭비를 막고 고비용·저효율 의회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의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하면서 국민투표 관문만 남겨뒀다.

현재 이탈리아 국민 10만명당 국회의원 수는 1.5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인 0.97명보다 많다. 한국(0.58명)과 비교해도 3배 가까이 많은 수준이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감축안이 가결되면 이 수치가 1.0대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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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34개국 국민 10만명당 국회의원 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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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 운동은 의원 수가 줄면 세비로 나가는 돈도 줄어 연간 1억유로 (약 1372억원), 임기 5년을 기준으로 5억유로(약 6864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경제학자들도 이보단 적지만 3억유로(약 4118억원)정도의 예산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의회 규모 축소로 효율성은 높아지고 부정부패는 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반대 측 "대의 민주주의 원칙 훼손"



반면 반대파는 의원 수 감축이 의회의 권위를 약화하고, 대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국민 수가 늘수록 소수 정당의 입지는 좁아지고,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기회도 적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또 의원 수가 적어지면 로비스트의 영향력이 더 커져 부정부패가 더욱 극성을 부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7전 8기 도전, 이번에는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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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주세페 콘테 총리가 20일 로마에서 열린 의원 정수 감축안 국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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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의회는 1983년부터 37년 동안 7차례 의원 수 감축안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가장 최근은 2016년 마테오 렌치 총리 재임 시절이다. 당시 렌치 총리는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헌법을 고쳐 상원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이고, 입법권을 하원에 집중시키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정부에 대한 상원의 신임투표 참여권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았다. 상원의 권한을 축소해 정부 내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단원제 도입안으로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59%의 반대로 부결됐다. 렌치 총리는 패배를 시인하고, 사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개헌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막대한 의원 세비, 저효율 국회 시스템 등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강해지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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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몬테시토리오 국회의사당. 이번 국민 투표에서 의원 정수 감축안이 통과되면 다음 총선인 2023년부터 상원과 하원 의원 정수가 각각 36%씩 줄어든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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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줄곧 50%를 상회했다. 가장 최근 진행된 9월 초 조사에서는 찬성이 70%에 달했다.

다만 이번 투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치러지는 첫 대형 선거인 만큼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안일한 대응으로 유럽 내 확진자 수 최고치를 기록하며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야권인 우파연합도 현 내각의 무능을 내세워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투표율이 얼마나 나올지도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국민투표는 당초 3월 29일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에 6개월 가량 연기됐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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