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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빙하가 녹는다? 찢기고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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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스테픈(Konrad Steffen, 1952.1.2~ 2020.8.8)
한국일보

70년대부터 그린란드와 남극 빙하를 연구한 선구적 빙하학자 콘래드 스테픈은 2002년 논문에서 빙하 소실의 새로운 양상, 즉 땅과 닿은 빙하 바닥의 물 윤활작용 때문에 '대륙적 덩치'로 바다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빙하 연구의 주춧돌을 놓고 기후위기의 시나리오를 다시 쓰게 한 그가 그린란드 현장 캠프 인근 크레바스에 빠져 숨졌다. 얼음이 녹으면서 근년에 새로 생긴 크레바스였다. 2007년 그린란드의 스테픈. CIRES/CU Bo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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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는 위기가 아니라 축복(빙하기 지연설)이며, 인간 탓이 아니라 자연현상의 일부(자연 주기설)라는 끈질긴 가설들이 45년 전 미국 컬럼비아대 해양학자 월러스 브로커(Wallace Broecker)에 의해 사실상 처음, 과학적으로 부정됐다고 쓴 바 있다. 브로커는 ‘기후 화석' 중 하나인 심해 퇴적물을 분석한 1975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기후 변화의 원인과 충격적 추이를 '데이터'로 처음 입증했다. 기후 연구는 그를 기점으로 옳은 방향을 찾았고 표나게 다급해졌다. 70년대 말 무렵엔 한 해 평균 20~30편의 주목할 만한 논문들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실질적 분수령은 1989년 냉전 종식이라 해야 한다. 냉전기 두 진영은 상대의 ‘핵탄두 숫자에 더듬이를 대느라 바빠, 미국물리학회 과학사센터장 스펜서 워트(Spencer Weart)의 말처럼 ‘(내일을 모르는 안보 상황에서) 50년 뒤 세상에 대비할 여유도 의지도’ 없었다. 냉전 이후에야 연구 예산들이 실질적으로 책정됐다. 미국 기상학자 마이클 만(Michael Mann, 1965~)은 지난 1,000년 지구 대기온도가 산업혁명 이후 하키 스틱처럼 솟구쳐 오른 사실을 1998년 그래프(하키스틱그래프)로 그려 보였고,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는 2007년에야 '지구 온난화의 원인 90% 이상이 인류가 배출한 탄소 때문일 가능성(likelihood)'을 보고서로 공식 인정했다.

바다와 빙하는 버텨주리란 헛된 희망


스위스 취리히 공대를 졸업한 콘래드 스테픈(Konrad Steffen, 1952.1.2~2020.8.8)이 대학원에서 빙하 기상학 연구를 시작한 게 70년대 말이었고, 북위 3.5도 그린란드 극지 만년설 해발 1,127m 빙상(Icefield, 氷床)에 반영구 텐트 3동의 기상관측소 ‘스위스캠프’를 세운 건 냉전 직후인 1990년이었다. 이후 그는 매년 그린란드 대륙빙하의 급격한 소실 현황을 연구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과학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었고, 그 양상과 속도가 시뮬레이션 결과보다 훨씬 충격적이라는 사실을 논문 뿐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으로 세상에 알렸고, 정치인과 기자들을 캠프에 초대해 현장을 직접 보게 했다. IPCC 보고서를 집필하기도 한 그였지만, 회원국 모두의 입맛을 맞춰야만 간신히 채택될 수 있는 그 보고서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다시 말해 얼마나 실상에 뒤쳐진 것인지 알리는 데도 앞장섰다.

지금 인류가 심심찮게 보는 극지 빙하의 붕괴 동영상과 그래픽을, GPS도 없던 40여년 전부터 직접 보고 관측하며 발을 동동 굴렀을 그가 8월 8일 오후 악천후 속에서 캠프 인근에 새로 생긴 크레바스(빙하 균열)에 빠져 익사했다. 향년 68세.

1970년대 이전까지, 지구 온난화를 두렵게 여기던 과학자들조차 '그래도 바다는 버텨주리라' 여겼다. 그 기대는 80년대 산호초의 급격한 백화와 수온 상승 데이터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80년대 학계는, 극지 표면을 1~2km 두께로 뒤덮고 있는 대륙 빙상만큼은 대기나 해수 온도가 조금 올라도 무척 더디게 ‘수백, 수천 년 단위로' 반응하리라 예상했다.

스테픈도 마찬가지였다. 90년 스위스캠프를 열던 무렵만 해도, 그의 연구 주제는 극지 빙하와 기후 관련성이었고, ‘평형선(Equilibrium Line)’ 즉 여름에 녹고 겨울 빙설로 복원되는 빙상의 고도(양)는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리란 게 그(의 연구)의 전제였다. “당시 그린란드는 기상학적으로 거의 연구된 바 없었고, 인공위성도 그 위도엔 오래 머물지 않아 연구에 활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운 게 그린란드 빙상 최초의 스위스캠프였고, 20여 곳의 무인 관측 네트워크였다.

첫 10년 동안 빙상의 겨울 평균 온도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승했다. 관측 오류가 염려돼 논문 발표조차 꺼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4m 깊이로 빙상에 말뚝을 박아 세운 태양광 기상탑이 무너졌고, 그린란드 서부해안의 거대 야콥샤운 빙하(Jakobshavn Glacier)가 "마치 해머로 때린 듯" 무너져 내렸다. 빙하가 바다로 미끄러지는 속도는 97년 이래 5년 사이 2배로 빨라졌고, 1.5km 두께의 빙상 위에 터를 잡은 그의 캠프조차 하루 평균 약 50㎝씩 흘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GPS와 위성 데이터로 확인됐다. 1만년 전 최종빙기 이래 북반구 기상현상을 지탱해온 극지 평형선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빙하가 녹는다'는 흔한 말은, 틀린 건 아니지만 한가한 표현이었다. 빙하는 녹을 뿐 아니라 붕괴되고 있었다. 스테픈이 2002년 국제지질학회지 논문에서 밝힌 빙상의 '동적 반응(Dynamic Response)' , 즉 빙상 표면의 용해-증발이나 해양 경계면 붕괴는 드러난 현상일 뿐, 결정적인 건 대륙 빙하 바닥까지 스민 물이 윤활작용을 하면서 대륙 빙하 자체가 거대한 썰매처럼 바다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사실. 그의 연구는 학계를 경악시켰고, 기후위기의 모든 시나리오를 다시 쓰게 했다.

"그린란드가 찢어지고 있다"


먼저 용어를 알자. 극지 얼음은 크게 바닷물이 얼어서 형성된 해빙과, 수만 년 쌓인 눈이 다져진 민물 얼음 즉 빙하로 나뉜다. 지구는 민물의 약 99%를 극지와 고산의 빙하 형태로 담고 있고, 지구의 모든 강과 호수 등의 물을 다 합친 게 나머지 1%다. 빙하는 다시 빙상(Ice Sheet)과 빙붕(Ice Shelf) 빙산(Iceberg)으로 나뉜다. 빙상은 면적이 5만㎢(남한 면적의 약 절반) 이상인 거대 얼음평원으로 대부분 남극과 그린란드에 펼쳐져 있다. 빙붕은 빙상이 바다로 이어져 물에 잠긴 경계권역이다. 바다에 떠서 녹기도 하지만 빙상으로부터 계속 얼음을 공급받기 때문에 크기와 두께(300~900m)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해수온도 상승 등 변수가 빙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이를테면 빙상의 방벽이다. 빙상과 빙붕의 파편 중 해수면 위로 5m 이상 솟아 바다에 떠다니는 것들이 빙산이고, 5m 미만은 그냥 얼음 덩어리다.

상식 하나도 환기하자. 바닷물이 데워져 대양의 모든 빙산이 녹더라도 해수면은 그대로다. 빙산의 90%는 이미 물에 잠겨 있고, 10%의 ‘일각’이 녹더라도 얼음이 물로 변하면서 부피가 10% 줄기 때문이다. 물론 수온 상승은 그 자체로 해수면을 높인다. 물 분자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열확산, thermal expansion)이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 주범은 대륙빙하, 즉 빙상의 붕괴다. 빙상 면적이 줄어들면 햇빛을 덜 반사하고 열을 더 흡수하는 ‘알베도 효과(albedo effect)’ 때문에 온난화와 빙상 붕괴는 더 가속화한다. 거기에 더해 스테픈이 밝힌 '동적 반응'은 빨라진 노화를 걱정하는 이에게 사고로 인한 급사(急死)의 가능성을 더한 카산드라적 충격이었다. 과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그린란드 빙상이 모두 녹으면 지구 해수면은 약 6m 오르고, 남극까지 녹으면 60m 상승한다. 그린란드 빙상은 2012년 한해에만 약 4,000억톤이 사라져 10년 전보다 소실 속도가 약 4배 빨라졌다. 이제 적지않은 과학자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다고 예측하고 있다.

빙상은 이름처럼 고르게 평평하지 않다. 오히려 파도처럼 거칠고 불규칙하다. 깊은 균열과 골짜기(크레바스)가 있고, 강과 여울이 있고, ‘물랑(Moulin)’이라 불리는 수직의 동굴들도 즐비하다. 캘리포니아대 빙하학자 로렌스 스미스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빙상 구조를 ‘스위스 치즈’에 비유하며, 물랑과 크레바스를 통해 바닥까지 흘러든 물이 ‘칼이 버터를 자르듯' 빙상을 결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현상은 오직 현장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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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스테픈은 탁월한 학자이자 교수였고, 빼어난 대중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는 유력 정치인과 언론인을 빙상에 초대해 위기의 실상을 직접 보고 느끼게 했다. 2016년 미 백악관에서 열린 첫 극지각료급회의에 스위스 대표로 참석해 발언하는 스테픈(맨 오른쪽). Swiss Federal Institute for Forest, Snow and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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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스테픈(애칭 코니)은 스위스 취리히의 패션 디자이너 아버지와 회계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콘라트 슈테펜(현지 독일어 발음)'이란 이름을 얻었다. 청소년기 꿈은 배우였고, 그의 외모와 기질은 그 꿈에 걸맞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먼저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연기학교를 가든지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77년 취리히 연방공대(E.T.H Zurich)를 졸업했고, 84년 기후 빙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약 1년 간 취리히공대와 캐나다 맥길대에서 강의했고, 86년 미국 볼더(Boulder)의 콜로라도대 방문연구원을 거쳐 전임교수(91~97)가 됐고, 볼더 환경과학협동연구소(CIRES) 소장(2005~12)과 스위스연방자연연구소(SFIFSL, 2012~) 창립 소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서 강의하며 수많은 연구자를 양성했고, 50여 편의 동료검증(peer review) 논문을 썼고, IPCC 5차보고서(2014) 집필을 주도했다.

저 이력을 거치면서도 그의 베이스캠프는 늘 ‘스위스캠프’였다. 그는 매년 4월이면 연구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데이터를 확인하고, 반경 10km 빙상을 설상차와 도보로 누비며 훼손된 캠프 시설과 장비를 손보고 무인 관측장비를 점검했다. 빙상 연구자는 눈사태나 추락 등 사고에 대비해 극지 탐험가에 준하는 안전장비를 갖추고, 방수 컴퓨터나 드론 등 개인 관측장비까지 휴대한 채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고되고 위험한 작업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해양대기청(NOAA) 등이 지원하는 연 예산 5,000만 달러(2007년 기준)와 550여 명의 연구진을 거느린 거대 연구소 CIRES의 총책임자로 있는 동안에도 그는 매년 저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빙상을 사랑했다.
한해 동안 사라지는 그린란드 빙상의 물로 이 도시를 채운다면 당신들은 지금 수심 1.6㎞ 물속에 있을 것이다
2007년 미 하원 청문회에서


배우 지망생이던 그는 “전염성 강한 열정”과 감각적 표현력을 지닌 대중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했다. 그는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와 현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등 유력 정치인과 기자들을 스위스캠프에 초대해 기후 위기의 실태를 직접 보게 했다. 현장에 가려면 군 수송기(Air National Guard LC-130)로 래브라도 해를 건너 설상 착륙용 경비행기나 헬기로 갈아타야 하고, 다시 설상차로 캠프까지 이동해야 한다. 식량과 장비도 물론 싣고 가야 한다. 헬기의 경우 1회 화물 적재 한도는 360kg, 시간당 비용은 약 5,000 달러다(2007년 기준). 경비를 아끼기 위해 다 싼 화물을 풀어 359kg에 맞추는 연구원들의 수고도, 그는 예산을 줄 정치인들이 보게 했을 것이다. 2007년 미 하원 청문회에서 그는 “매년 사라지는 그린란드 빙상의 물을 워싱턴D.C에 부으면 당신들은 수심 약 1마일(1.6km) 물밑에 잠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방대한 민물이 극지 바다로 유입되면 조류와 해양 생태계가 격동하고, 줄어든 빙상이 제트기류를 흔들어 지구의 기후를 요동치게 한다. 극지는 기후위기의 미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자, 스테픈의 표현에 따르면 거대한 ‘기상 머신(Weather Machine)’이다. 그 재생 불능의 기계가 무서운 속도로 망가지고 있다고도 증언했다. 기후 연구는 돈이 많이 드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는 빼어난 학자이자 교육자였고, 예산을 따내는 데도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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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픈은 과학자이자 탐험가였고, 그에게 빙상은 연구 현장이자 생기의 산소탱크였다. 그는 멸종해가는 생명체를 사랑한 생물학자처럼, 빙상을 연구하고 사랑했다. C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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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루 평균 3,4시간밖에 안 자던 일 중독자였고, '359㎏ 짐보따리'에서 담배(Marlboro)와 커피만큼은 못 빼게 했던 니코틴- 카페인 중독자였다. 그의 제자인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 제이슨 박스(Jason Box)는 “우리는 ‘그가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고, 혈관에 피 대신 에스프레소가 흐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담배는 그가 만 24시간 동안 딱 한 번 ‘끊은’ 적이 있었다. 한 동료와 배핀만 인근 랭커스터 해협(Lancaster Sound)의 부빙(Ice Floe)에서 학위 논문을 위해 현장연구를 하던 1978년, 혼자 얼음 경사면을 횡단하다 눈사태로 설상차가 전복돼 다리가 부러진 때였다. 그는 관측장비 표식용 알루미늄 막대로 부목을 대고 설상차로 눈보라를 막으며 만 하루를 버틴 끝에, 품에 '유서'를 지닌 채 구조됐다. 그는 한 기자에게 “담배까지 피우면 혈관이 확장돼 얼어죽을 판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썼던 유서를 늘 간직하고 살았던 그는 1984년 결혼(Regula Werner, 2011년 작고)해 아들 둘을 낳았고, 2017년 재혼(Rose Marie Stouder)했다.

저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그는, 그래도 언젠가는 조금은 다른 전망과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 낙담을 거듭했을 것이다. 2007년 IPCC 보고서는 “지금 추세라면 2100년 해수면은 약 18~58㎝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근년 NASA 보고서는 ‘최소 65cm(26inch) 상승해 3,200만~8,600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07년 무렵부터 “1m 이상 상승할 수도 있다"고,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말했다. “우선 사람들이 과학자들의 말을 듣고, 정치인들이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고, “빙상의 과학자가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를 멘토 삼아 우주공학에서 기후빙하학으로 전공을 바꾼, 현 CIRES 소장 월리드 압달라티(Waleed Abdalati)는 스테픈을 따라 스위스캠프에 처음 갔을 때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가슴을 활짝 열고 지그시 그린란드의 공기를 음미하던 그"를 회상하며 "그에겐 그게 노동이 아니라 열정이고 기쁨이었다"고, "그곳이 그에겐 집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IPCC 보고서의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에서 "2010년 해수면은..."을 "2100년"으로 바로잡습니다.(9월 23일)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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