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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서 ‘黨’자 빼고 환골탈태… ‘국민의 힘’ 받아 일어설까 [황용호의 一筆揮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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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1대 총선서 참패 여파 이름 바꿔

민주화 이후 ‘당’ 떼고 성공사례 두 번

실패 한 번 있어 ‘국민의힘’ 앞날 주목

“체질 개선 통해 합리적 보수 거듭나야”

“당명 간결하고 힘 있어 보여” 의견 분분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첫 관문

서울시장 놓치면 대선도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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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페이스북 계정 프로필 사진에 올라 있는 새 당명 '국민의힘'. 페이스북 캡처


지난 2일 미래통합당 간판을 내리고 신장개업한 ‘국민의힘’은 성공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미래통합당 계열 정당 중 당명에 처음으로 ‘당’(黨)을 없애고 개명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2016년 20대 총선,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 패배한 국민의힘이 당명 교체를 포함한 혁신 작업을 통해 ‘4연패’ 늪에서 헤어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1997년부터 15년간 당명을 유지한 한나라당은 2012년 2월 새누리당으로 문패를 갈아 치우고, 그해 실시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연거푸 승전고를 울렸다. 그러던 새누리당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 의결 후, 2017년 2월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3년 만에 새로운보수당 등과 합당하며 당명을 미래통합당으로 정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역시 21대 4·15 총선에서 103석의 초라한 성적에 그쳐 지도부가 퇴진하며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총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공백 사태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의원과 당원을 제외하곤 모조리 바꾼다는 각오로 환골탈태를 시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가시적인 조치로 당명을 교체하며 당의 가치와 비전을 담은 정강·정책과 당헌도 대폭 손질하는 등 대수술에 착수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4년간 고장 난 나침반처럼 표류했던 정통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정상 궤도에 진입해 항행할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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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9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내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선 첫 관문

정당의 승패는 선거 결과에 달려있다. 국민의힘 첫 관문은 내년 4월 7일 실시되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라 할 수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내년 4월까지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이런 결심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에 승부수를 걸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시장 자리를 놓치면 국민의힘은 당명 개정 등 당 개혁을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뿐 아니라 2022년 대선에도 가망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민의힘 김수민 홍보본부장은 1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명 개정과 관련해 “당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느냐가 당명 교체의 핵심”이라며 “정치의 생산자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대 당에서 국민의힘 당명에 들고 일어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성공) 가능성의 방증”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국민의힘 당명으로 내년 서울시장 선거 찍고, 2022년 대선에 승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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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렸다.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는 “당명 못지않게 어떤 노선과 정강정책을 채택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국민의힘은 그동안 기득권층을 대변했던 정당에서 벗어나 국민을 대표하며, 마치 저항 정당, 집권에 도전하는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4·15 총선 참패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국민의힘 당명은 간결하고 힘이 있어 보여 느낌이 괜찮다”며 “특히 김종인 위원장이 5·18민주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당명을 개정해 민주당에서 이탈하는 중도층을 흡수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반면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국민의힘 저변에는 여전히 퇴행적이며 강경 극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정권교체가 힘들 것”이라며 “당명만 교체하면 어림없는 일”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너무 오른쪽에 있는 국민의힘은 좌로 가야 한다. 당의 정강정책과 강령을 확 바꾸는 등 체질 개선을 근본적으로 하며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면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강경 수구세력과 결별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유력 대선주자가 없는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리 교만하더라도 집권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화 이후, 두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사례

1987년 민주화 이후 당명에서 ‘당’을 뺀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는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 승리를 거두어 성공 사례로 꼽힌다.

1990년 3당 합당 후 1992년 14대 대선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김영삼(YS) 대통령과 민주계는 ‘세계화’ 명분을 내세워 여당인 민주자유당 김종필(JP) 대표 축출을 시도했다. 이에 JP는 “나는 혁명(5·16 군사정변)을 한 사람”이라고 반발하며 탈당해 1995년 3월 자민련 깃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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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3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자유민주연합 창당대회에서 김종필 총재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JP는 그해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청권 3개 시·도지사와 강원도지사까지 꿰차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거머쥔 JP는 정치적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 발 나아가 JP는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대통령 후보와 DJP연대를 통해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와 함께 공동정부를 세웠다. JP는 공동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JP에 이어 DJ도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당시 자민련과 국민회의 당명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특히 자민련은 일본 자민당을 연상시킨다며 뒷말이 나왔으나 이런 논란은 선거 승리를 하며 깨끗이 정리됐다.

제14대 대선 낙선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DJ는 1995년 6월 실시된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관여하고, 후보 지원 유세를 하는 등 사실상 정계 복귀 행보를 보였다.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과 광주시장, 전남·북 지사 4곳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며 승리를 거둔 DJ는 그해 정계 복귀 선언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DJ는 이듬해 실시된 15대 총선에서 79석의 저조한 성적으로 참패를 맛봐야 했다. DJ는 이에 흔들리지 않고 JP와 손잡고 15대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했다.

반면 2014년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방선거에 선전했으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참패해 지도부가 사퇴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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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공동대표로 선출된 김한길(왼쪽), 안철수 대표가 손을 들어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연패하며 시름에 빠진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인 새정치연합과 합쳐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해 실시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등 9곳 광역단체장을 확보하며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다음 달 치른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11대 4로 패배해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꾼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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