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 16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지지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기본' 이름을 연달아 붙이는 그의 공약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영화 제목에 빗대 "이재명의 '본 시리즈'"란 말이 나온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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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실용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또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였다. 주력 브랜드인 기본소득에 이어 최근 기본대출권 도입, 지역화폐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찬반 논란에 불을 붙였다. 지자체장 출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1차 재난지원금으로 국민들이 보편복지의 단맛을 본 상황에서 이재명의 ‘기본 시리즈’는 앞으로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적 주목도와 정책 실효성은 별개다. 부동산·금융 등 각계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 등을 근거로 이재명 발(發) 파장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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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전문가 ‘갸우뚱’
이 지사는 조세재정연구원과 지역화폐 효용을 두고 공개 대립했다. 조세연이 15일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 발행의 역효과를 지적하면서다. 이 지사는 즉각 한국지방행정연구원·경기연구원 등 다른 공공 연구기관의 의견을 거론하며 “조세연 연구결과 발표가 시기, 내용, 목적 등에서 엉터리”라고 비난했다.
한국은행 출신으로 유학을 마치고 지난해 조세연에 힙류한 송 박사는 논란이 된 자신의 보고서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당연히 없다. 1년 전부터 시작한 연구”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세재정연구원이 "얼빠졌다"고 수 차례 주장했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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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해외 지역화폐 성공 사례로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 일본 ‘아톰 통화’ 등을 꼽는다. 하지만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경제학 교수는 “일본에서도 비판이 많아 (지역화폐) 활성화 주장이 과거보다 희석됐다”며 “지역화폐 효과는 동네 마트, 식료품점 등 일부 업종에서만 제한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라고 했다. 고용 창출 등 광범위한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데 주류 경제학자들이 공감대를 형성 중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기본 시리즈’도 "현실 몰라" 비판
기본대출권·기본주택은 이 지사가 지난 7월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고 야심차게 선보인 새 정책들이다. 기본대출권은 국민 누구나 ▶신용도와 상관없이 ▶1~2%의 낮은 이자로 ▶최대 800만~1000만원을 대출받고 정부가 이를 보증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시장 기능을 저해하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김윤경 이화여대 교수)이라고 비판하는 금융전문가들이 많다. 금융위원회에서도 “들어가는 비용·재원, 늘어나는 부채 문제를 생각할 때 (기본대출권을) 과연 실현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는 15일 “정책서민금융 공급이 대출자가 다시 고금리 대출에 기대는 일을 막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9일 경기도청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이 지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등 극단적 위기상황에 빠진 골목경제를 살기기 위해 추석 경기 살리기 한정판 지역화폐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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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산엔 제도권 밖 사금융 이용자가 누락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2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복지 대출’을 시작하면 금리 심사 체계가 무너진다. 2금융권도 고신용자 위주 영업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아 되레 서민·저신용자가 돈을 빌리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앞서 금융연구원은 ‘금리가 8%포인트 떨어지면 대략 65만명이 불법금융 시장으로 내몰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금융권에선 “지금도 교묘하게 안 갚는 대출자가 많다. 이 정책이 현실화되면 재정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낭비될 것”(저축은행 관계자)이라는 우려가 크다. “다수가 힘들어도 잘 갚는다”는 이 지사 주장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란 반응이다.
“남들은 바보라 못했겠나”
이재명의 기본 5종세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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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주택에 대한 부동산 전문가 비판도 신랄했다. ▶무주택자 누구나 자격요건 없이 ▶4인 가구 기준 월 57만원가량 월세로 ▶30년 이상 거주권을 보장하겠단 발상이지만 정책 세부 내용을 뜯어본 관련 전공 교수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 지사는 “싸고 품질 좋은 고급의 중산층용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요지에 대량공급해 싱가포르처럼 모든 국민들이 집을 사지 않고도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길곤 서울대 교수는 “싱가포르는 (임대인에) 장기임대주택의 소유권을 준다. (기본주택은)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며 “30년 간 월세로 살라는 기본주택은 집에 대한 인간의 소유욕에 반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이어 “한 곳에 20~30년 이상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직장이나 교육 여건에 따라서도 움직인다”고 했다.
경기도 산하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경기도 기본주택의 최상층에 스카이라운지,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스카이 커뮤니티' 공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동탄2 A94 블록에 계획 중인 스카이 커뮤니티 구상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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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하 한양대 교수도 “공공임대를 공급한다는 이유만으로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하면 주택 문제 외에 교통, 교육 등 다른 여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용적률 500%인 주택에 살려는 사람이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충고가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경기도는 주택도시기금을 낮은 이율로 빌려주라는데 현재 주택도시기금은 취약계층만의 주거복지를 위해 쓸 재원으로도 모자라다”고 꼬집었다. 최 소장은 “기본주택은 결국 박근혜 정부의 중산층용 임대주택 정책인 ‘뉴스테이’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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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왜
“이재명의 정책들을 관통하는 공식이 있다. 당장 표가 될 법한 길을 가자는 ‘여론조사식 경제 정책’이란 점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한 박사가 “이 지사는 매번 지금 배고프니까 종자 쌀알까지 다 먹자고 한다. 학자들이 내년 농사를 어떻게 짓냐고 펄쩍 뛰는 게 당연하다”며 한 말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 16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대법원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전 인사하고 있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통화에서 ’기본주택, 기본대출권 등 잇따라 제안한 게 많은데 지역화폐 전쟁까지 붙어 요즘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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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지사는 “경제는 과학을 넘어 정치”라고 한다. 그는 17일 페이스북에 “형제살해의 동물 세계를 벗어나 인간적 시장경제질서를 만드는 것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썼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지사가 사회·경제적으로 양극화 타파를 내세우고, 정치적으로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며 지지율 상승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포석”(수도권 의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기)본 시리즈’에는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에 이어 2가지 버전의 보편 복지 아이디어가 더 남아있다고 한다. 이른바 ‘기본 5종 세트’를 완성해 대선 공약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낙연 대표를 에워싼 민주당 주류에선 거부감이 뚜렷하다. 한 친문 의원은 “얼빠진 조세연” 등 이 지사의 표현을 두고 “그렇게 몰아붙이는 건 장사꾼이나 하는 일이지 지도자가 보일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18일에도 “조세재정연구원이 갈수록 이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사흘 새 5건 째다. "토론과 논쟁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이라던 지난 13일의 표현과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심새롬·하준호 기자 saerom@joongang.co.kr, 김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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