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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라면 화재’ 속 끝까지 동생 지키려 한 초등생 형, 여전히 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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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방치·폭행 속에서도 동생 챙긴 형

세계일보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지난 17일 오전 물청소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은 초등학생 형제가 여전히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엄마의 방치와 수 차례 폭행에도 평소 동생을 지극히 챙겨온 형은 화마 속에서도 이불로 동생을 보호하려 하는 등 끝까지 지켜주려 한 것으로 파악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 형제의 엄마는 화재 발생 전날부터 지인을 만나느라 집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의 한 빌라 2층 집에서 불이 난 지난 14일 오전 11시20분쯤 “살려 달라”는 아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안방에서 쓰러져 있는 형제를 발견했다. 당시 한 아이는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고, 다른 아이는 책상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고 한다. 책상 아래에는 이불이 둘러싸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형제 중)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을 구하려고 책상 아래로 동생을 밀어넣고 이불로 주변을 감싸 방어벽을 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발견했을 때부터 의식이 없던 이들 형제는 나흘째인 이날까지 의식이 없다.

A(10)군과 B(8)군 형제는 나흘 전 엄마가 없는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려 라면을 끓이다 집에 불이 나면서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형 A군은 상반신에 3도 중화상을 입는 등 전신 40%에 화상을 입었고, 동생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었지만 연기를 많이 마셨다고 한다. 동생은 상태가 다소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겨졌지만 형은 여전히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형제의 엄마 C(30)씨는 지인을 만나느라 전날부터 집을 비웠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그러나 형제가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건 화마가 덮친 그날만의 일이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방치하고 학대했다.

특히 C씨는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가 있는 큰아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 차례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ADHD는 주의력이 떨어지고 산만하며 행동이 지나치게 활발하고 충동 조절과 행동 통제가 안 되는 장애로 어린아이나 청소년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장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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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불이 나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 내부의 모습.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한 뒤, 지난달 18일 아동보호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아동보호 사건은 아동학대 범죄자에 대해 법원이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내리는 사건을 뜻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달 24일 인천가정법원에 아동보호 사건을 청구했다.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지난 5월 법원에 “A군과 동생 B군을 엄마(C씨)와 분리해 아동보호시설에 위탁하게 해 달라”며 피해아동 보호 명령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달 27일 분리 조치 대신에 “C씨의 상담을 6개월 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위탁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법원 관계자는 “아이들이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적절한 다른 처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군 형제는 가정보육을 고집한 엄마 C씨의 반대로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고,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돌봄교실을 단 한 차례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부모 가정에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인 C씨 가족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여파로 아이들이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자활근로 사업이 중단돼 생활고가 심해지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돌봄 공백 상태가 더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A군 형제를 향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에 따르면 A군 형제에 대한 후원·기부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기관들도 잇따라 지원 의사를 밝혔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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