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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드론으로 바라보는 세상

[Digital+] 현실같은 VR 공연·드론 마술…코로나 걱정없이 IT 쇼·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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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버닝맨 행사 마지막 날 불태우게 될 가상 신전 `엠피리언 템플`의 모습.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가상현실(VR) 공간에서 `신전 불태우기`가 진행된다. [사진 제공 = 버닝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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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는 캠프를 어떻게 짓는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우리가 만든 컴퓨터 그래픽을 전시하자고. 서둘러. 할 일이 많아."

현실세계 캠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올해 처음으로 가상현실(VR) 공간에서 열린 대형 이벤트 '버닝맨'에서 실제로 진행된 대화다. 코로나19 여파로 VR에서 열릴 수밖에 없었던 버닝맨은 매년 8월 말~9월 초 실리콘밸리 유명인이 대거 몰리는 이벤트로 알려져 있다. 네바다주에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털어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는 이 이벤트에 참가한 뒤 "누구나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 3월, 버닝맨 주최 측은 이 행사를 온라인으로 개최하겠다고 결정한 뒤 사막 위 모든 공간을 사이버상에 구축하기 위해 엔지니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9일 동안 사이버 공간 10개가 문을 열었다.

◆ 버닝맨은 공연과 창작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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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래프2020에서 뉴욕시에 위치한 매직랩과 MIT 미디어랩의 사이버 마술사 마르코 템페스트가 수많은 드론을 한꺼번에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 매직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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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은 버닝맨 이벤트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수많은 전시·공연·창작물을 사이버상에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VR, 웹디자인, 앱디자인 기술을 적용했다. 특히 주최 측이 이 모든 플랫폼을 만든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과거 버닝맨 참가자(버너)가 플랫폼을 지금 형태로 진화시키는 데 대부분 공헌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결과 실제로 사막에서 캠프를 쳐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 속에서 영상회의 형태로 각종 공연과 행위예술 등을 보여주는 일이 가능해졌다. 가상공간 10곳은 모두 그런 형태의 서로 다른 플랫폼인 셈이다.

기자도 가상공간 중 한 곳인 '스파클버스'에 지난 1일(현지시간) 참여했는데, 여기서는 에로틱하지 않은 소설을 에로틱하게 읽으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공연이 열리기도 했고 로봇 장난감을 들고 우주괴물, 우주공룡, 블랙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괴한 세션이 열리기도 했다. 가까이 있지는 않아도 다른 버너와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멀티 영상회의 공간(빌드어번)에서는 여러 해에 걸쳐 버닝맨에 참가했던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캠프를 만들 논의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기거하는 캠프가 아니라 가운데 마련된 광장(플라야)에서는 각종 공연, 전시 등이 이뤄졌다. 사막을 수영하는 듯한 모습을 한 조각상을 3차원(3D) 디자인 형태로 만들어 VR로 보여주기도 했고,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연상케 하는 사이버 조각상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각종 음악 공연이 광장에서 시간대별로 열리고 있었고 전기톱으로 조각하는 모습을 영상회의로 시연하는 퍼포먼스도 열렸다.

9일간 열리는 버닝맨 이벤트의 8일째 밤(9월 5일)을 장식하는 '버닝맨' 불태우기 이벤트도 따로 떨어진 공간에서 진행된다. 버닝맨의 상징과도 같은 이 이벤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자아를 발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끄러움, 자의식 등을 모두 태워 버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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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맨 2020에서는 실제 사막에 있는 캠프처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캠퍼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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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 피날레를 장식하는 버닝맨 이벤트 '신전 불태우기'는 3D로 만든 가상의 신전을 불태우는 것으로 대체한다. 원래대로라면 사막에 거대한 신전을 짓고 그 안에 가슴 아픈 사연 등을 담은 각자의 물건을 매달아놓은 다음 한꺼번에 불태우는 이벤트였는데 올해는 각자 버닝맨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자신만의 장식물을 디자인하고 이를 가상의 신전에 부착해 불태우는 것으로 변화했다.

버닝맨을 유명하게 만든 창의적 예술작품, 신기하면서도 예쁜 옷을 입은 매력적인 젊은이들, 자유로운 히피문화 등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체험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어떤 3D 게임에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버닝맨 2020에 내려진 평가다.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세컨드라이프 등이 주어진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게임이라면, 버닝맨이 만든 서로 다른 VR 플랫폼 10개는 참가자들이 플랫폼을 함께 진화시키고 현실세계와 VR를 조합해 창의적인 것을 배출하는 일을 펼친다.

버닝맨 주최 측 일원인 데이브 엑스는 "사막에서 네 마음대로 하라는 게 버닝맨의 정신이었고, 코로나19 사태로 그게 가능해졌다"며 "우리는 지금 창의적인 인간 커뮤니티가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 VR에서 마술을 논의한 '시그래프'

'버닝맨'이 창의적인 이벤트와 VR를 활용한 다채로운 전시 등에 역점을 뒀다면 지난달 21일부터 일주일 동안 열린 최대 컴퓨터 그래픽 관련 이벤트 시그래프(Siggraph)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전시의 모습을 보여줬다.

시그래프는 컴퓨터 그래픽 관련 콘퍼런스, 전시, 비즈니스 미팅 등이 함께 진행되는 이벤트인데, 이 모든 것을 사이버상에 한데 모았다. 콘퍼런스는 영상회의를 통해 진행됐다.

특히 키노트를 맡은 사이버 마술사 마르코 템페스트는 드론 여러 대를 손으로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술이 이미 마법처럼 진화하는 시대에 마술 또한 기술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굳게 닫힌 수갑을 풀고, 손안에서 비둘기를 날리는 마술이 아니라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드론 수십 대를 한꺼번에 날리는 신개념 마술을 선보인 것이다.

그는 이날 키노트를 통해 이런 트릭을 어떻게 세트업하는지에 대한 노하우 등을 청중에게 공유해 주었다.

템페스트는 "수많은 엔지니어의 협력이 이 마법 뒤에 숨겨진 비밀"이라고 말했다. 화면에서는 템페스트가 여러 드론을 한 번에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엔지니어가 드론 움직임 하나하나를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시그래프는 콘퍼런스 외에 새로운 그래픽 관련 하드웨어와 기술을 전시하는 성격이 강한 이벤트였다. 이 때문에 가상공간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주최 측이 자체 개발한 솔루션을 활용해 영상회의·VR 형태로 제품을 전시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참가자들은 제품에 대한 짧은 동영상을 보고, 곧 큐레이터나 전시에 나선 기업 관계자와 채팅·영상회의가 연결되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형식이었다. 참가자들과 네트워킹 또한 자체 개발 플랫폼으로 이뤄졌다.

약 40만명이 참여했고 연구보고서 169종이 이번 행사에서 출간됐다. 700여 개 세션이 이뤄졌고 95개국에서 온 발표자 1600여 명이 등장했다. VR를 활용한 짧은 필름 몇 편도 이번 행사에서 처음 공개됐다. 시그래프 2020 행사를 주관한 시그래프 2020 의장 크리스티 프론은 "코로나19로 그래픽인 커뮤니티는 더 강하고 단단하게 협력하게 됐고, 그 결과 첫 가상 콘퍼런스 형태로 수많은 세션과 전시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 콘텐츠·기술경쟁 뜨거운 전시산업

코로나19는 예기치 않게 전시산업의 기술적 진화를 촉발하고 있다. 버닝맨은 독특한 창작과 참여문화를 통해 참석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10개나 되는 다양한 플랫폼을 짧은 시간 안에 진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픽 콘퍼런스인 시그래프는 자체 플랫폼 고도화 전략을 통해 청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다수의 IT 전시산업 관계자는 내년 초에 열릴 CES 2021이 어떤 기술적 진전을 이뤄낼지 주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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