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가수 최초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
이어 첫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로 석권
코로나19로 침체된 시기 대중 사로잡아
약점 지적됐던 라디오 방송 횟수도 선전
30일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베스트 팝’ 등 4관왕에 오른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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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2018년 5월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로 아시아 가수 최초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정상을 차지한 지 2년 3개월 만에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라 빌보드 양대 메인 차트를 석권한 것. K팝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다.
아시아 가수가 ‘핫100’ 1위에 오른 것은 1963년 일본 가수 사가모토 규의 ‘스키야키’ 이후 57년 만이다. 2010년에는 한국계ㆍ일본계ㆍ중국계ㆍ필리핀계 등 멤버들로 구성된 미국 일렉트로닉 그룹 파 이스트 무브먼트가 ‘라이크 어 지식스(Like A G6)’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전 한국 가수 최고 기록은 2012년 7주간 2위에 오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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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만에 ‘핫 100’ 1위 아시아 가수 등장
9월 5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사진 빌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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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역대 빌보드 ‘핫 100’ 순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빌보드는 31일(현지시간) “‘다이너마이트’는 발매 첫 주 미국에서 3390만회 스트리밍되고 30만 건의 디지털 및 실물 판매고를 올렸다”고 밝혔다. ‘다이너마이트’는 첫 주 원곡과 EDMㆍ어쿠스틱 리믹스 버전 음원이 발매됐고, 바이닐(LP)과 카세트테이프 등 실물 음반으로도 판매됐다. 특히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는 26만 5000건을 기록해 2017년 9월 테일러 스위프트의 ‘룩 왓 유 메이드 미 두(Look What You Made Me Do)’ 이래 3년 만에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1위 소식이 전해지자 멤버들은 팬 커뮤니티 위버스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며 소감을 밝혔다. 9월 1일 정국 생일을 맞아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지금도 울고 있다” “실감이 나야 잠이 들지” 등의 메시지가 번갈아 가며 올라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4연속 1위를 기록하는 동안 대중성의 지표인 싱글 차트 정복은 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과제였다. 2018년 ‘페이크 러브’(10위)로 ‘핫 100’ 톱 10에 처음 진입한 이후 지난해 ‘작은 것들을 위한 시’(8위), 올해 ‘온’(4위) 등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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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가사가 멜로디에 더 잘 붙어 선택”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트위터에 빌보드 ‘핫 100’를 자축하며 올린 글.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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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발매한 ‘다이너마이트’는 방탄소년단에게도 여러모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미국 래퍼 디자이너가 참여한 ‘마이크 드롭’(2017)이나 라우브가 피처링한 ‘메이크 잇 라이트’(2019), 호주 출신 시아와 협업한 ‘온’(2020) 등 기존 발표곡을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리믹스 버전으로 발표한 적은 있지만 100% 영어로 된 곡은 처음이다. 멤버들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가이드 녹음할 때 영어 가사가 좀 더 멜로디에 잘 붙었다”(뷔)고 영어 곡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앨범 단위 스토리텔링을 중시해온 이들이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RM은 “‘다이너마이트’는 하반기 앨범 작업 과정에서 만나게 된 곡인데 살짝 무게가 없고 생각 없이 신나는 곡이라 예정에 없던 싱글로 발매하게 됐다”고 밝혔다. 작사ㆍ작곡 역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나 멤버들이 아닌 외부에 맡겼다. 미국 보이밴드 조나스 브라더스 등의 곡을 작업한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제시카 아곰바르가 만든 곡이다.
방탄소년단 역대 ‘빌보드 200’ 순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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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알앤비+디스코…남녀노소 좋아해”
지난달 21일 공개된 방탄소년단 첫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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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앨범 판매량이나 스트리밍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라디오 방송 횟수를 만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브루노 마스나 위켄드처럼 최근 몇 년간 유행한 90년대 알앤비와 디스코를 결합해 남녀노소 모두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곡”이라고 분석했다. 랜디 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미국 내 배급을 맡고 있는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정식 발매 전부터 ‘미리 듣기’ 전용 버스를 끌고 다니며 DJ를 초청하는 등 라디오에 공을 많이 들인 것이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발매 첫날 ‘글로벌 톱 50’ 1위로 진입한 ‘다이너마이트’는 한 주간 4000만회가량 재생되면서 주간 차트에서도 2위를 유지했다. 발매 사흘 만에 ‘팝송 라디오 차트’ 30위로 진입한 데 이어 이번 주는 역대 최고 순위인 20위로 올라섰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공개 24시간 만에 1억 뷰를 넘어 현재 3억 뷰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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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곡 비로소 1위…비영여권 차별 여전”
30일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다이너마이트’ 무대를 처음 공개하는 방탄소년단.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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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으로 적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에 무력감을 느껴 이를 헤쳐나갈 돌파구가 필요했다”(지민)거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빨리 팬분들께 에너지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M)는 설명처럼 코로나19로 모두가 무기력한 상황에서 기운을 북돋기에 적합한 곡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당초 예정된 월드투어가 취소된 상황에서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비단 아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보내는 밝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 영어로 부르는 것 역시 매끄럽게 연결됐다”고 짚었다.
영어 곡에 도전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의견이 많다. 2009년 한국 가수 최초로 ‘핫 100’ 76위에 오른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에서 히트한 곡을 영어로 다시 부른 곡이라면, 방탄소년단은 한국어 노래로 팬덤을 확보한 뒤 전 세계로 확장된 팬들을 위해 영어 곡을 만든 셈이다. 캐나다에 거주 중인 랜디 서 평론가는 “영미권에서는 영어 곡 발표에 대한 요청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도 상당히 쌓여있는 상황이었다”며 “이를 적절한 타이밍에 해소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영미권 시장이 얼마나 보수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의견도 있다. 이규탁 교수는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앨범 차트 4연속 1위를 하는 동안에도 라디오 등 전통 매체에서는 비영어권 국가 출신 아티스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어로 만든 곡으로 비로소 싱글 차트 1위를 했다는 것은 미국이 ‘글로벌’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얼마나 ‘로컬’인지를 보여줬다”며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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