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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종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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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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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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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실 때 유난히 자주 찾는 음악이나 뮤직비디오가 있다. 필자는 아예 수십개의 플레이리스트를 유튜브에 만들어 놓았는데, 몇 개의 리스트에 중복해서 들어가 있는 노래 중에 호지어라는 가수의 ‘테이크 미 투 처치’를 소개할까 한다.

예술가들의 산실인 아일랜드 출신인 호지어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세계적인 팝스타 반열에 올랐다. 누가 아일랜드 출신 아니랄까 봐 2m에 가까운 체격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지적이고 예술적인 풍모로 가득하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니나 시몬과 엘라 피츠제럴드를 위시한 블루스-재즈 계열의 선배 가수들을 흠모한다고 밝혔다. 극도로 문학적인 가사에 블루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노래를 많이 부른 걸 보면, 아주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가수인 것만은 틀림없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노래는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하다. 다만 종교를 비판하는 쪽인데 이런 식이다. 뮤직비디오에도 동성애 커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마녀사냥 하듯 이들을 짓밟는 러시아의 호모 포비아를 다룸으로써 기독교의 편협하고 폭력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그의 노래 중에선 록음악에 가까운 편이며 가사도 강렬하다.

‘저를 교회로 데려가주세요. 그럼 저는 거짓된 성지에서 한 마리 개처럼 예배드리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고백할 테니 칼을 갈아 죽지 않는 죽음을 내려주세요. 신이시여, 제 생명을 거두어주세요. 아멘.’

이토록 불경한 가사에 이토록 성스러운 노래라니. 가사 내용과 반대로, 호지어는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이며 심지어 무신론자도 아니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래서 노래에 더 설득되기도 한다. 심지어 교회 성가대에서 오래 활동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그의 노래에는 종종 성가대풍의 코러스가 들어가는데 이 노래 역시 가스펠의 향기가 물씬 난다. 여러모로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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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중세로 대표되는 종교의 시대는 그랬다.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무수한 전쟁과 폭력과 탄압을 저질렀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동성애자들 역시 오랫동안 종교적 핍박의 대상이었지만, 그토록 컴컴한 시대는 완전히 저물었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은커녕 태양계의 중심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의 진화 과정도 밝혀졌다. 신이 있고 없고를 증명할 방법은 없으나 적어도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는 합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뤄져 있다. 그런데도 일부 종교의 일부 종교인들은 그릇된 방법으로 종교의 힘을 과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그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방역당국에서 그토록 애원하고 경고하는 와중에도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대규모 집회를 열어 방역시스템을 무너뜨렸고, 그 후로도 적지 않은 수의 교회가 문을 열고 신자를 불러 예배를 하게 했다. 바로 지난 주말 모습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방역수칙과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주고 있지만 아마 이번 주말에도 자기 멋대로 신을 팔아먹는 작자들은 여전할 테다. 이쯤 되면 종교가 왜 필요한 것인지 회의를 품는 사람도 있을 테지.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됐으니 종교의 의미가 사라진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커졌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란 놀랍도록 부족하고 오만하기 때문이다. 요즘 탐독하고 있는 <오늘부터의 세계>라는 책에서,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와 환경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인간의 문명이 번성하면서 도리어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이 잇따라 등장할 것이라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종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까지 경고한다. 바로 그 잘난 이성과 과학의 발전 덕분에 말이다.

인생은 아이러니라고 하는데, 인류의 역사 또한 아이러니다. 무려 제러미 리프킨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는 매일 일상에서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내가 담당하는 집안일 중 분리수거가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전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두배 넘게 늘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 독자님들의 분리수거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중 가장 부피가 작은 축에 속하는 마스크만 봐도 그렇다. 전체 세계 인구 중에서 마스크를 쓰는 인구를 딱 10억명이라고만 가정해도, 1년 동안 지구 어딘가에 버려지는 마스크의 양이 3650억장! 우리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저지른 죄의 대가를 고스란히 자연에 전가하고 있고, 이는 언젠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벌로 돌아올지 모른다. 나는 종교의 진정한 힘은 독선과 고집이 아니라 이성과 과학의 오만함을 상쇄하는 겸손함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야말로 진짜 종교의 힘, 즉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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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사람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어려우니 오늘 혼술이나 한잔할까? 호지어의 노래를 크게 들으며, 가짜 종교의 광기가 가득한 뮤직비디오를 보며, 조금 취해도 좋을 것 같다. 안주는 배달을 시켜야 하나? 그럼 또 플라스틱 쓰레기가…. 윽! 냉장고나 털어봐야겠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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