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아시아문화펀드 투자받은 서석준 대표…‘계약 위반’으로 1심서 패소 후 부도 위기 처해 / 서 대표 “‘광주에 신규법인 세워 투자금 집행하면 된다’는 투자조합 말 믿고 계약” 주장 / 문체부·투자조합 측 “1심 판결을 참조하라. 더 자세한 내용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의 포스터. 스튜디오홀호리 제공 |
17년째 창작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서석준 대표는 지난해 2월 날아온 고소장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서 2016년 9월 개봉한 창작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에 투자한 펀드로부터 이미 정산한 수익금 1억7500만원을 뺀 나머지 투자금과 연 20%의 위약금을 반환하라는 게 서 대표를 괴롭히는 소송의 핵심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투자사는 개봉 후 지분에 따라 수익을 분배받는데, 은행 융자와 달리 수익금이 투자금에 못 미쳐도 투자금의 반환을 요구하지는 않는 게 보통이다.
그는 왜 뒤늦게 소송을 당한 것일까?
서 대표가 투자를 받은 돈은 광주의 문화산업 진흥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시가 공동 출자한 모태 펀드로, 업계에서는 아시아문화펀드, 이른바 ‘광주펀드’라고 불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문화관광산업 육성과 지역의 유망 기업 및 프로젝트 유치를 목표로 아시아문화산업 투자조합(리딩아시아투자조합) 1호가 2012년 결성돼 광주펀드를 기반으로 투자에 나섰는데, 광주시가 35억원·문체부가 38억4000만원·민자 117억원이 더해진 190억4000만원 규모였다.
서울에 사업체를 두고 활동하는 서 대표가 이 펀드의 투자를 받은 연유부터 궁금했다.
◆MBC와 SBA의 ‘애니프렌드’ 그리고 ‘광주펀드’와의 계약
서 대표는 영세 기업의 현실에서 비롯됐다고 한숨부터 쉬었다. 애초 그는 MBC와 서울시의 중소기업 지원기관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이 함께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활성화와 안정적인 배급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한 ‘애니프렌드’ 사업의 공모에 참여했다.
이 사업은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고 안정적인 배급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제작비 조달과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망 중소 제작사가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극장용 장편의 투자·제작비를 지원해준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창작 스튜디오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전체 스태프가 매달려 도전한 끝에 2013년 6월17일 당선 공고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서 대표는 20일 “서울 소재 기업만 공모할 수 있는 이 사업에 도전한 우리에게 MBC는 광주펀드에 투자분이 있으니 그쪽 돈을 받으라고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어 “광주펀드를 받으려면 현지에 가서 작품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제작의 이원화로 극장판 진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자 ‘광주에 신규 법인을 세워 투자금을 받아 집행만 하면 된다’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이후 투자조합까지 나서 MBC와 비슷한 제안을 했고, 이들 기관의 말만 덜컥 믿고 2013년 8월30일 MBC, SBA와 계약을 맺은 데 이어 9월9일 신규 법인인 달빛연못크리에이티브랩을 세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9월13일 이 특수목적회사(SPC)와 투자조합 간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고, 이후 제작과정 전반을 서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소재 스튜디오홀호리에서 진행했다. MBC와 투자조합의 제안처럼 이후 작년 2월까지 어디서도 이 같은 제작방식을 제지하는 기관은 없었다고 전했다.
서 대표는 “해마다 투자조합의 회계검사를, 2013∼15년 여섯 차례에 걸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정기점검도 받았다”며 ”어디서도 별다른 지적은 없었고, 그 결과 개봉 후 대형 배급사를 통해 3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수익을 정상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달빛궁궐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한국 영화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 유적인 창덕궁 낙선재에서 시사회를 열었고,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 페스티벌에도 초청받아 호평을 받았다”며 “광주가 아닌 서울에서 시사회를 열었으나 그때 역시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1심서 패소…투자 원금 넘는 거액 뱉어낼 처지
서 대표의 자긍심이 됐던 달빛궁궐은 작년 2월 투자조합의 청산인을 원고로 한 소송 제기에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이 소송의 골자는 그가 계약서의 중요한 조항인 ‘광주 지역에서 투자금의 80%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위반한 만큼 투자금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마무리된 1심은 계약서에 적시된 ‘투자금의 80%를 광주에서 소진한다’는 조항을 들어 서 대표에게 잔금 3억여원에 4년간 이자 20%를 더해 6억5000만원의 반환을 명령했다.
그는 “광주펀드의 대표 매니저로부터 계약 전 80% 소진의 기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듣지도 못했다”며 “대신 ‘투자할 테니 광주에 문화산업전문회사를 설립하라. 이 특수목적회사의 명의로 계약하면 조건이 충족된다’는 취지의 구두 설명을 듣고 계약서에 날인했다”고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광주에 본사를 둔 4대 보험에 가입한 임직원의 인건비만 인정된다’는 식으로 투자조합 관계자와 문체부는 주장하는데, 그 당시는 아무런 기준이 없었다”며 “광주펀드를 받은 다른 회사의 계약서를 구해보니 2014년 10월 이후부터 추가 조항으로 ’광주에서 직접 소비’, ‘갑(투자자)이 인정하는 방법으로’, ‘협의하되, 만일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의 지침에 따른다’는 등의 구체적인 조항이 등장하고, 2017년 이후에야 구체적인 인정기준이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문체부 등 정부 기관도 한차례 지적조차 없었다
서 대표는 또 ”소진 기준을 계약 전 알았다면 구태여 광주펀드를 받을 일도 없었다”며 ”아니 적어도 투자조합의 회계감사나 문체부 위임을 받은 콘진원의 정기점검 때 지적이라도 받았으면 지켰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특히 콘진원의 위반 기업 실사 때 우리는 제외됐다”며 “당시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진 개인적인 빚에다 이번 2심까지 진다면 큰 빚을 떠안고 내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을 하고자 열악한 환경에서 동고동락한 스튜디오 스태프의 생계조차 막막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광주펀드 투자조합과 관리 책임이 있는 문체부가 낮은 수익률에 대한 지적을 피하고자 그 책임을 투자한 회사에 전가하는 게 이번 소송의 본질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서 대표는 “광주 1호 펀드의 연수익률이 14%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비해 우리는 국내 개봉에서만 40% 가까이 정산했고, 지금도 수익을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공모에 정당하게 당선돼 공공기관을 믿고 투자금을 받았는데, 결과는 연 20%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창작 애니메이션 육성을 위한다면서 지원한 국가기관이 정작 열심히 만든 업체를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서 대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원고 격인 문체부와 투자조합 측은 “1심 판결을 참조하라”며 “더 자세한 내용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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