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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쯤 수행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끄적거리던 것이 계기가 됐어요. 그린 것들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고요. 그림을 따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어머니가 화가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죠. 생각해보니 이화여대 재학 시절 학보에 만평을 그린 적도 있네요."
카툰 그리는 비구니 서주 스님(46)은 코로나가 극성을 부린 올해 '그림엽서 무료 나눔' 운동으로 화제가 됐다. 그림엽서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다워니'다. 통통한 이등신 몸매에 커다란 귀, 개구쟁이면서도 간절함이 담긴 눈, 터질 듯한 볼에 가사를 입은 모습이다. 손에 찻잔을 들고 천진난만한 눈으로 별을 바라보고 있는 '다워니'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귀엽고 편한 캐릭터가 있어야 내용 전달이 잘 될 것 같아서 '다워니'를 생각해냈어요. 언젠가 어른 스님께서 제게 '다원(多原)'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 이름에 비구니의 '니'를 붙여서 '다워니'를 만들었죠. 귀여운 동자승 이름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서주 스님은 2005년 출가 후 운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운문'에 삽화를 그리면서 본격적인 불교 카툰 작가가 됐다. 그림을 가지고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도 나갔고 개인전도 열었다. 스님은 엽서 나누기 운동을 하면서 '신중파워'라는 단어도 만들어냈다. 엽서를 받아본 사람들은 다워니가 장풍을 날리는 포즈로 '신중파워'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절로 웃음을 짓는다.
"신중(神衆)은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존재는 대부분 무섭게 그려져 있어요. 불법을 보호하고 삿된 것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신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죠. 저는 그 모습을 귀엽게 변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중'이라는 말에 힘과 에너지를 준다는 의미로 '파워'를 붙인 거죠. 보는 분들이 기운이 '업'된다고들 하시니 기분이 좋아요."
현재 청주 보산사에 머물고 있는 스님은 이화여대를 다니다 서울대로 학교를 옮겨 공부하던 중 출가했다.
"대학 시절 나 자신이 삶에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걸 찾기 위해 교회도 가고 심리학·철학 책도 찾아보고 했지만 답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데 모니터에 'WHO AM I?'라는 단어가 뜨는 거예요. 무엇에 홀린 듯 그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참선하는 사찰을 소개하는 사이트였어요. 그렇게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었죠."
스님은 올해 그림엽서를 통해 많은 사람을 위로했다. 한 장의 엽서가 병상에 있는 사람에게, 절망에 빠진 청년들에게, 군장병들에게 전달돼 희망을 준다면 그것이 부처님의 자비를 실처하는 것이라 스님은 믿는다.
"불교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낮아진 건 모두 스님들 탓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보여줘야 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을 게을리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누가 불법승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스님들이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출가 후 다시 학문에 뛰어들어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배움과 수행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 스님은 원래 올해 초 미국 LA 위산사로 수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위산사는 스님이 존경하는 위앙종 큰스님 영화선사가 법을 펼친 곳이다. "영화선사 가르침 아래 수행을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오는 바람에 미국행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코로나는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줍니다. 바이러스의 출현·변형·확산·재확산 과정이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탐욕스럽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탐진치)'에서 비롯된 겁니다. 코로나를 극복하려면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공생하는 존재로서 서로에 대한 배려심, 이타심, 자비심을 가져야 합니다."
서주 스님은 불경말씀 중에 범망경(梵網經)에 나오는 "대중은 마음을 다하여 믿으라. 너희는 당래(當來)에 이룰 부처요. 나는 이미 이룬 부처니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수행정진해서 다가올 미래에 부처가 되는 것. 그것이 스님이 가고 싶은 길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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