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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아베 정부에 직격탄 날린 佛특파원이 바라본 한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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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몽드의 한국ㆍ일본 특파원 필립 메스메르
"박정희 정권은 사회적 합의 없이 한일협정 맺어"
"유럽서도 전후 피해 표면화하는 데 수 십년 걸려"
한국일보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한국ㆍ일본 특파원인 필립 메스메르씨가 12일 한국일보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스카이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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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숨은 피해자의 존재는 1960년대 후반까지 드러나지 않았죠. (한일 문제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해요."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한국ㆍ일본 특파원 필립 메스메르씨가 12일 한국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메스메르씨는 2004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특파원 생활을 시작, 이듬해부터 르몽드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메스메르씨는 지난해 10월 일본의 한 주간지에도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았다. 주로 현 일본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얘기로, 피해자 중심주의 맥락에서 바라본 시각을 내놨다. 이에 그는 "프랑스는 자기들이 착취한 국가에 사죄했냐", "일본은 유럽의 식민지와는 전혀 다르다" 등 일본 네티즌들이 남긴 수많은 악성 댓글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야기를 소개한 국내 한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100만을 넘기기도 했다.

가장 민감한 이슈에 대해 일본 특파원으로서 일본에 직격탄을 내놓아도 괜찮냐는 본보의 물음에 메스메르씨는 "나는 일본 특파원이면서 또 한국 특파원이다. 내 생각대로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면서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에도 쓴소리를 종종 내놓는다"며 웃었다. 자신을 향한 악성댓글이 있다는 소식도 안다는 그는 "실질적 협박은 없으니 괜찮다"며 개의치 않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15일은 광복 75주년이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 무역 갈등, 불매 운동 등 전방위적인 갈등 속에서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꼬여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동시에 취재하는 유럽 미디어의 특파원은 제3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일협정 당시 피해 사실 바로 드러내기 어려운 점도 고려해야"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은 것은 2018년 10월 우리 대법원이 일본제철에 징용 피해자들에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징용공 보상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메스메르씨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그 협정을 맺었는지 봐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협정을 맺었기에 '불완전한 협정'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1965년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전후 복구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 독재 정권 하 한국 내에서는 (협정 체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또 "박 정권은 경제부흥을 우선시, 배상금의 대부분을 인프라 건설 등에 사용해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징용 피해자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협정 체결 당시 한국에는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지 못한 희생자'들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종전 직후 나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는 19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표면화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 1일 독일 공군의 첫 포격으로 1,200명이 희생된 비엘룬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비엘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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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종전 반세기가 지난 1995년에 처음으로 유대인 박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처럼 "식민 지배가 남긴 상처는 전쟁이 끝나는 동시에 전모가 밝혀지는 게 아니며, 30~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서 새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게 메스메르씨의 생각이다.

그는 "독일은 폴란드에 대한 전후 보상에 대해 '정치적ㆍ법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2019년 9월 1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에게 고개를 숙인다'며 폴란드어로 또 한 번 사과했다"고 지적했다. 또 1990년 프랑스와 독일은 교과서 왜곡 시정을 위해 '역사 지리교육 지침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아베 등장 이후 일본서 사과 배상 논의 사라져"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국내 '일본 불매 운동'과 관련, 메스메르씨는 "일본 국민들보다는 일본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나 아사히맥주와 같은 소비재를 다루는 기업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여행 및 관광업이라고 메스메르씨는 전했다. 그는 "이전과 달리 한국인 관광객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며 "원래 일본에 오는 외국 관광객들은 중국에 이어 한국인이 2위였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실질적인 영향은 뚜렷하지 않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혐한ㆍ우익 세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본인은 역사 문제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불매 운동에 대해)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31일 영업 종료를 앞둔 서울 유니클로 강남점에 내걸린 안내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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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일본 정부의 현재 태도는 어떤 것 같냐는 질문에 메스메르씨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그냥 이 문제를 조용히 덮고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1993년 고노 담화(談話) 때 일본은 공식적으로 강제성과 잘못을 인정했지만, 그 해는 또 군국주의 개헌을 꾀하는 아베 총리가 야당 정치인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연도"라며 "그 때문에 이후 일본 국회에서도 사과와 배상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 메스메르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일) 양측 모두 과거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로 정중한 대화를 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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