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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곡성, 가평서 ‘인재’…2011년 ‘우면산 산사태’ 뒤로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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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현장

13명 목숨 앗아간 산사태

도로 옹벽 50m 아래로 꺼지며

전남 곡성 산사태로 5명 사망

토사에 3명 매몰된 경기 가평

폭우·산사태 대비 안 된 ‘인재’

산사태 참사 되풀이되지만

펜션·전원주택 위험 사각지대

산지 소규모 주택 대책 부족

산사태 컨트롤타워도 없어


한겨레

지난 8일 오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에 산사태로 망가진 주택 잔해물이 한쪽으로 정리돼 있다. 전날 발생한 산사태가 주택을 덮치면서 5명이 매몰돼 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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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장기 장마가 잇단 산사태를 부르고 있다. 13일 기준으로 산사태로만 전국에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산지 공사 관리와 산사태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인재로 밝혀지고 있다. 2011년 우면산 참사 등 대형 산사태를 되풀이해 겪고 있지만 여전히 대책의 사각지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전남 곡성과 경기 가평 산사태 현장에서 재난의 원인을 조사한 녹색연합의 서재철 전문위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왔다.

밑이 빠졌다. 도로가 밑으로 꺼져버렸다. 지난 7일 5명의 사망자를 낸 전라남도 곡성군 산사태는 도로 밑이 내려앉으며 시작되었다. 산사태 발생 지점은 도로의 옹벽이었다. 도로 노면 확장공사를 한다며 쌓아 올린 옹벽이 50m 이상 아래로 흘러내렸다. 현장에 노출된 산사태의 시작 지점은 섬뜩할 정도였다. 밑으로 꺼지면서 경사가 90도로 깎인 곳도 있었다. 무너진 옹벽의 남은 단면이 직각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지난 9~10일 찾아간 곡성 산사태 현장은 공포심마저 일으켰다.

인재가 부른 비극
옹벽은 국도 15호선의 곡성군 오산면과 화순군 백아면 경계인 성덕고개에서 곡성 오산면 선세리 성덕마을 쪽으로 무너졌다. 국도 확장 보강공사 과정에서 그대로 터져 나갔다. 애초 기존 2차선 국도 옆에 노면을 확장하기 위해 콘크리트 옹벽을 축대처럼 세우고 성토재처럼 흙을 넣어서 쌓았다. 거기에 빗물이 유입되고 배수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서 쌓았던 흙과 물이 엉켜 엄청난 무게로 커지면서 아랫마을 쪽으로 터져 나간 것이다.

무너진 도로 아래의 골짜기에는 마치 협곡이 생긴 것 같았다. 수목은 물론이고 토석까지 남김없이 쓸어버렸다. 산사태가 훑고 간 경로 중간에 승용차 한대가 보였다. 도로 노면에 세워져 있다가 산사태가 나면서 그대로 휩쓸려 내려간 것이다. 흰색 4륜구동 자동차 한대가 마치 놀이터 모래밭에 묻힌 장난감 자동차처럼 처박혀 있었다.

국도 15호선의 곡성군 오산면 쪽 도로 노면에는 옹벽 공사를 하다 만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남아 있는 옹벽 잔해와 흘러내린 지반은 산사태가 인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살펴본 한국산림기술인회의 정규원 박사는 “정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지만, 옹벽 공사 현장의 관리 부실이 1차 원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물론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도로 공사 옹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으로 판단된다.”

성덕마을에서 5가구 5명의 주민이 산사태로 숨졌다. 7일 저녁 산사태가 몰고 내려온 토사가 주택 5채를 묻어버렸다. 완전히 매몰된 3채의 집에서 50대 부부와 70대 여성 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튿날 다른 집 2채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2명의 추가 사망자가 나왔다. 매몰된 집 바로 옆에서는 농업용 트럭이 휴지처럼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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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전남 곡성군 산사태가 시작된 국도 15호선 도로 옹벽 공사 현장. 서재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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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산사태 피해 현장은 밀려온 토사로 마치 쓰레기 매립장처럼 변해 있었다. 토사에 쓸려 형체조차 없어진 건물의 잔해와 가재도구가 엉켜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엄청난 토사가 쌓였다. 산사태가 밀고 온 토사를 밟으면 갯벌 진흙처럼 발이 쑥쑥 빠져들었다. 난리, 난리, 무서운 것이 물난리라고 산사태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마을 주민 김양호씨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마을에서 이런 흉측한 일은 없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도 옹벽 공사를 무리하게 했다. 장마 전에 한달 동안 도로 절개지에서 발파 공사도 했다. 마을에서 발파 진동과 소리가 들렸다. 도로 옹벽에서 콘크리트와 흙이 무너져서 산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주민들은 ‘이번 장마가 시작된 이후 공사 현장 관리·감독 기관인 전남도청이나 시공업체가 집중호우에 대비한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통상 산지 이용 및 개발 현장에서 장마, 태풍 등으로 집중호우 우려가 있으면 미리 점검을 한다. 흙을 쌓거나 옹벽을 올린 곳에 빗물이 모여들어 산사태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산지 관리의 기본에 속한다. 하지만 곡성의 국도 15호선을 관리하는 전남도청은 그런 기본적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13일 기준)에 따르면, 올해 장마로 지금까지 36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사망자 중 13명이 산사태 피해자였다. 곡성의 5명 외에도 전북 장수에서 2명, 경기 가평에서 3명, 경기 평택에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산사태의 원인을 파고들면 모두 인재였다. 비가 많이 와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사태들이 아니었다. 산지 관리 부실이 낳은 재난이었다. 산지를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배수 체계를 비롯한 물 관리를 하지 못해 발생했다.

앞으로 산지 인허가 때 산사태 위험을 잘 살핀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산지에 들어선 도로를 비롯한 각종 사회기반시설에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은 여전하다. 아울러 2000년 이후 경기·강원·충청도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전원주택과 펜션들도 산사태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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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 뒷산에서 산사태에 휩쓸린 차량 한대가 토사에 묻혀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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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주택 전수조사 필요
경기도 가평의 펜션 산사태 현장도 산지 관리 부실이 낳은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지난 3일 오전 산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2층짜리 펜션을 덮쳤다. 쏟아진 돌과 모래가 진입 도로를 막으면서 구조 작업이 늦어졌다. 두살 아이를 포함해 3명이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산사태로 펜션 건물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건물의 밑바닥만 남았다. 토사에 파괴된 건물 잔해를 포클레인이 치우자 펜션 자리가 휑하니 드러났다. 하지만 산사태가 발생한 비탈면에는 곳곳에 토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산사태가 진행된 사면에는 쓸려 내려온 수목과 흙덩이로 뒤엉킨 뿌리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산사태가 들이치면서 뽑히고 꺾인 아까시나무, 상수리나무, 잣나무, 물박달나무 등도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쓰러진 나무들은 수령 20년 미만인 비교적 어린 나무들이었다. 밀려 내려온 토사와 흙더미 사이에는 베어진 잣나무 밑동도 있었다. 40년 정도 자란 잣나무를 베어낸 흔적이다. 과거 산사태 발생 지점 주변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으로 보였다. 당시 훼손지 복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 올해 유례없는 장마와 겹쳐 화를 키웠다.

피해를 입은 펜션 바로 뒤는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 않았지만 30m가량 위쪽부터는 급경사였다. 특히 토양층이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시작된 곳은 사면의 경사가 상당했다. 가평 산사태의 진행 길이는 100m 정도였다. 산사태치고는 짧은 편이었으나 펜션을 집어삼킬 정도로 매서웠다.

펜션이 위치한 곳은 가평군 호명산 자락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가평읍 복장리와 산유리로 나뉘지만 물리적으로는 같은 호명산 동쪽 사면에 위치한다. 식생과 수목도 거의 동일하다.

산의 동쪽 사면은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하다. 토목 기술은 좋아서 2차선 아스콘 도로가 산허리를 관통한다. 산의 5부 능선을 지나는 도로 주변으로 펜션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피해 펜션은 그 중간에 있다. 이 일대는 산사태 위험이 큰 곳이다.

사고가 난 곳은 산유리인데 산사태 취약지구로 지정된 곳은 복장리 일대다. 정작 사고가 난 펜션 주변은 취약지구로 지정되지 못했다. 산사태 위험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산지관리법과 산사태 방지 대책이 따로 놀고 있는 대표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피해 현장은 앞으로 산지관리법에서 재해 위험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교훈을 주고 있다. 산지의 소규모 주택과 택지를 위협하는 산사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숙제를 던진다. 경기도와 강원도에 들어서 있는 산지 주택의 산사태 위험에 대해 정밀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주택별로 산사태 우려가 있는지 세부 등급을 매기고 데이터베이스화할 필요도 있다. 이 데이터는 실질적인 산사태 경보 발령에 핵심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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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서 전신주가 산사태로 구부러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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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27일 강원도 춘천시 마적산 자락 펜션에서 산사태로 13명이 숨졌다. 이번 가평 펜션 사고와 판박이였다. 두 사고 모두 산지에 펜션이 들어서는 인허가 과정부터 사고 순간까지 위험에 대한 인지나 경보가 없었다. 2011년 산사태 피해 이후에도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여전히 산림청의 산지관리법에는 ‘산지의 소규모 주택에 대한 산사태 안전 대책’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다. 또한 산지 주택과 택지에 대한 기초자치단체의 인허가 절차에는 산사태 위험에 대비할 규제 수단이나 검증 장치도 없다. 산지 정책에서 펜션과 전원주택이 산사태 위험의 사각지대인 것이다.

기후위기에 의한 기상이변으로 강우는 폭우로 변화하고 있다. 이번 여름 장마는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정부는 2011년 7월28일 우면산 참사를 겪으면서 항구적인 산사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장의 산지 관리를 보면 산사태 사각지대가 도처에 널려 있다. 우면산 산사태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세 정부째이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컨트롤타워가 없다
한국은 국토의 64%가 산지다. 산사태는 산지에서 빗물에 의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재해·재난이다. 그러나 산사태에 대한 컨트롤타워는 없다. 정부 안에 산사태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이끌어가는 조직이 없다. 산림청이 정량화된 공간정보에 기반해 위험등급을 판정하고 권역별 경보를 발령하는 정도다. 실제 현장의 위험인자에 대한 조처를 하고 예방할 수 있는 권한도 시스템도 없다. 국도에서 발생한 이번 곡성 산사태는 국토교통부와 전남도청 소관이었고, 가평 산사태는 행정안전부와 가평군 소관이었다.

안전은 위험을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산사태 위험을 제대로 보고 경고를 울려주는 조직이 필요하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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