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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SC] “조림? 푹 끓이셔, 끓다 보믄 조려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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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찬일 제공


한겨레

나는 당비를 내는 정당이 없다. 당은 있다. ‘생조당’이다. 여기서 ‘생조’는 생선조림의 준말이다. 당이란 당원의 정치적 신념의 결합체다. 생조당이 되려면, 미친 듯이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현재 당원은 딱 둘이다. 길을 가다가 생선조림을 판다는 식당을 보면 간판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낸다.

“생조 발견! 위치는 어디 어디.”

휴대전화 저장 공간이 넘치면 대개는 다른 하드에 옮긴다. 지금 내 폰 하드에는 옮기지 않고 남아 있는 사진이 딱 한장 있다. 양평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생선조림을 파는 가게를 찍어두었던 것이다. 아직 가보지 못해서, 하드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그 가게 앞에 취해서 가로수를 붙들고 비틀거리는 아저씨가 프레임에 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생선조림 판다는 가게가 제법 맛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낮이었다. 낮술에 취한 아저씨가 가는 대폿집, 거기에 생선조림. 뭔가 술꾼의 로망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금천교시장-이라면 다들 몰라도, 경복궁역 2번 출구 파리바게뜨 골목이라면 다 안다-에 잘 가는 집이 몇 있다. 이 동네가 갑자기 뜨면서 난리가 났다. 권리금도 뛰고 월세도 뛴다. 골목 안쪽 자리는 툭 하면 새 가게가 들어선다. 별거 아닌 집도 유명세를 치른다. 그냥 열어만 놔도 장사가 되는 분위기다. 잘 가던 집 중 하나는 파김치와 가오리찜이 유명한 곳이다. 이것도 생선조림 축에 들기는 한다. 조림이 아니라 찜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 집에 꾸역꾸역 가는 이유는 생선조림을 먹기 위해서다. 그것도 조기조림이다. 메뉴에는 없다. 조기찌개가 있을 뿐이다. 조기찌개도 좋지만, 조림이 얼마나 더 맛있나. 하지만 파는 집이 드물다. 조림이라고 해서 시켜보면 대개는 찌개나 탕이다. 조기는 조금 들었지, 맛이 나올 구석이 없으니 그 많은 양의 국물에 무엇을 넣어 맛을 입히나. 결국 조미료 힘을 빌린다. 먹다 보면 혀가 아리다. 그럴 거면 그냥 조림을 팔면 되는 것 아닌가. 하기야 수육을 시켜도 국물 넉넉히 부어 주는 게 요새 바뀐 식당 풍속이다. 금천교시장 그 집에서 이렇게 주문을 한다.

“찌개 하나 주시는데, 국물은 반 만 잡아주세요.”

그러나 별무소용이다. 그냥 국물 적게 조림처럼 해달라고 해도 한강처럼 부어 준다.

“이게 아니고요, 이모.”

“그냥 끓여봐 계속. 조림되지.”

그렇구나. 그냥 끓이면 조림이 되는구나. 그러다가 살이 다 부서지는 게 문제다. 조림은 조림, 찌개는 찌개인 것을. 어쨌든 우리나라 요식업에서 찌개와 조림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조림이 점점 더 찌개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법은 없으면 좋은 것이나 이 경우는 필요하다.

“조림은 국물의 농도가 72%, 고형물(건더기)에 견줘 약 2.65배의 양 미만이어야 한다.”

어떤가. 동의하면 생조당에 들어오시라. 아직 각종 보직 자리가 다 비어 있다.

어려서 서울, 인천에 살면서 조기와 밴댕이를 많이 먹었다. 아, 조기 형제인 황석어(황새기)도 흔했다. 서해안을 타고 두 생선은 두루 잘 잡힌다. 조기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내장째 먹는 음식인데, 특유의 냄새가 있다. 말린 굴비를 못 먹는 다수의 사람은 그 내장 발효 냄새 때문이다. 조기 내장을 따지 않고 말린다. 대부분의 생선은 내장을 제거하고 말리거나 조리한다. 조기는 내장으로 산다. 밴댕이는 내장이랄 게 없다. 오죽하면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하겠나. 요리하는 처지에서는 아주 편하다. 내장을 빼도 그만 안 빼도 그만이다. 보령시에 갔다. 밴댕이조림 먹으러. 여기도 조림은 없다.

“조림? 푹 끓이셔. 끓다 보믄 조려져~이.”

그렇다. 충청도 특유의 낙관적인 세계관. 이게 밴댕이에요 반지에요?

“몰러. 다들 그냥 밴댕이라구 허지 반지라구는 안 해.”

또 한 방이다. 그냥 먹었다. 흔히 밴댕이회라고 먹는 건 거의 반지다. 비슷하게 생겼다. 밴댕이는 기름이 많아서 회로 먹기에는 썩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반지를 잘 모르니 그저 밴댕이라고 부르는 거다.

보령의 아저씨 술꾼들이 낮부터 술추렴이다. 한 상 가득 차렸는데 공짜다. 이른바 실비집이고 대폿집이다. 그 계절에 나오는 온갖 산물이 공짜 안주로 나온다. 감자며 삶은 계란이며 푸성귀며. 속 달래가며 술 마시라고 그냥 내오는 안주다. 밴댕이찌개처럼 정식 안주를 시키면 한 상 더 깔린다. 소금간이 간간한 찬들이다. 김치와 나물 같은 것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밴댕이가 유사 조림이 되어 있었다. 뭐, 이런 실비집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지.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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