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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美 CBS·MTV 일군 미디어 제왕 레드스톤 97세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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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비아콤 CBS를 만들어 `미디어 황제`로 불린 섬너 레드스톤이 12일 타계했다. 향년 97세/CBS캡처


“비아콤은 나다. 나는 곧 비아콤이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비아콤 CBS’를 일군 미디어 황제 섬너 레드스톤(97) 명예회장이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레드스톤은 CNN 창업자 테드 터너,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유주 루퍼트 머독과 함께 3대 미디어 거물로 꼽히는 인물이다. 비아콤 CBS의 자산가치는 320억달러(약 39조원·2019년 기준)에 달한다. CBS와 비아콤은 원래 한 회사였으나 2006년 분리됐고, 2019년 다시 합병됐다.

레드스톤 명예회장은 거대한 미디어 왕국을 남겼다. 세계 최고의 영화사·언론사·방송사·출판사만 골라서 거느리고 있다. 영화 제작·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처스,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인 CBS가 대표적이다. 볼턴의 회고록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폭로서를 연이어 출간한 출판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도 보유하고 있다. MTV·니켈로디언·코미디 센트럴·BET·VH1 등 케이블 TV 채널과 전국 라디오 네트워크 등도 비아콤 CBS 산하 회사다.

그는 젊은 시절 머리 좋은 변호사였다. 1923년 보스턴에서 트럭 행상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대 학부·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다. 2차대전 중에는 군에서 암호 해석 임무를 맡기도 했다. 1954년, 31세의 나이에 변호사 일을 관두고 아버지와 함께 극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객석 수를 줄이고 스크린 수를 늘린 멀티플렉스 모델을 최초 고안했다. 극장 체인은 12개까지 늘어났지만,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릴만큼 대단한 성공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비극이 먼저 찾아왔다. 1979년, 50대였던 레드스톤은 보스턴 코플리 호텔 화재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다. 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창틀에 매달려 있었던 탓에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30시간의 대수술을 받고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의사는 “정상적인 신체 활동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내렸다.

레드스톤은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임했다. 사고 후 8년이 지난 1987년, 다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비아콤을 인수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63세의 그는 4개월의 적대적 M&A 끝에 비아콤을 손에 넣었다. 이를 발판으로 음악전문 채널 MTV, 어린이채널 니켈로디언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1993년에는 대형 영화사 파라마운트를 손에 넣었고, 1999년엔 CBS 방송을 373억달러(약 44조원)에 인수했다.

잘 나가는 기업을 사들일 줄만 아는 투자자가 아니었다. 그는 늘 “콘텐츠가 왕이다(Content is king)”라고 말했다. 채권 은행들은 부채 정리를 위해 MTV 등 그의 회사들을 매각하라고 압박했지만, 그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는 끝까지 안고 갔다. 대신 케이블 시스템 등을 팔아 빚을 줄였다. 뉴욕 맨해튼 중심지의 고급 부동산을 팔고 프로스포츠팀을 넘기며 미디어 회사의 제작비를 댔다.

레드스톤은 아흔이 넘어서까지 경영 일선을 지켰다. 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승리 후 맛보는 자아도취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뒤에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아콤CBS 지분 80%를 보유한 지주회사를 소유했다. 자신이 일군 회사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컸던지 그의 자서전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비아콤은 나다. 나는 곧 비아콤이다. 이런 불가분의 관계는 영원할 것이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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