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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말 많고 탈 많았던 '검언유착' 수사…'부산 녹취록' 하나로 밀어붙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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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공소장 속 '검언유착' 증거 보니…

주요 물증은 사실상 '부산 녹취록'이 전부

그마저도 수사팀은 유리한 부분만 '발췌'

연락 횟수만 파악하고 내용은 기재 안 해

공모 대화 적시했지만…"그런 녹취 없다"

CBS노컷뉴스 윤준호·박성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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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전 채널A 기자.(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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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넉달간 요란스레 진행돼온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서 검찰이 내놓은 중간 결과물 가운데 손에 잡히는 물증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사이 이른바 '부산 녹취록'이 사실상 전부였다. 이마저도 검찰은 유리한 부분만 발췌했다.

검찰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주고받은 통화·문자 횟수도 공소장에 공개했지만 정작 그 내용은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달된 말에 불과한 '전문'으로 한 검사장의 개입 정황을 부각시켰다. '변죽만 울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11일 CBS 노컷뉴스가 확보한 이 전 기자의 공소장을 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형사1부·정진웅 부장검사)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검언유착'을 암시하는 증거로 크게 ▲부산 녹취록 ▲통화·문자 횟수 ▲'제보자X' 지모씨와 대화 등 3가지를 들었다.

'부산 녹취록'은 이 전 기자가 지난 2월 13일 한 검사장이 차장검사로 재직중이던 부산고검에 방문해 나눈 대화다.

수사팀은 공소장에서 이 전 기자가 신라젠 취재를 언급하며 목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고 이철 전 대표 측을 접촉하려 한다고 말하자, 한 검사장이 '그거는 해볼 만하다' '그런 거 하다가 한 두개 걸리면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적었다.

'검언유착' 의혹을 촉발시킨 신라젠 취재를 두고 사전에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논의한 흔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두 사람의 대화 중에서 공모의 반대 증거로 볼 수 있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 이사장의 신라젠 연루 의혹을 의심하는 이 전 기자의 발언에 '관심 없다'며 선을 그은 한 검사장의 말은 공소장에서 뺀 것이다.

특히 한 검사장은 당시 "유시민씨가 어디서 뭘 했는지 전혀 모른다"거나 "금융 범죄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며 유 이사장 의혹을 물어보려는 이 전 기자의 질문에 수차례 말을 돌렸다. 수사팀은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공소장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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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검사장.(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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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녹취록'은 지난달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도 이미 검토된 자료다. 당시 수사심의위는 '부산 녹취록'만으로 '검언유착'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배경이다.

당시에도 수사팀은 '부산 녹취록' 이외에 뚜렷한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도 이를 이 전 기자 공소장에 포함하면서 유리한 내용만 축약한 건 결국 수사심의위 이후에도 결정적 한방은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짙다.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주고받은 연락 횟수도 명시됐지만 공모를 입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공소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올해 1월 26일부터 3월 22일까지 통화 15회·보이스톡 3회·카카오톡 문자 등 모두 327회에 걸쳐 연락했다.

수사팀은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그의 대리인인 '제보자X' 지모씨와 만나기를 전후해 한 검사장과의 연락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적었다. 두 사람의 친분과 교감을 어느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수사팀은 횟수만 밝혔을 뿐 정작 연락 과정에서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재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수사팀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구체적인 연락 내용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착 의혹의 정황만 보여준 꼴이다.

이 전 기자와 '제보자X' 지씨의 대화도 비슷한 수준이다. 수사팀은 이 전 기자가 지난 3월 지씨를 만나 한 검사장으로부터 들은 말을 전달했다고 공소장에 썼다. 이 전 기자가 지씨에게 들려줬다는 녹음 파일의 내용에는 한 검사장 이름도 명시했다.

수사팀이 적은 해당 녹음 파일 내용에서 한 검사장은 '(제보를 하면)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간다' '(검찰과) 한 배를 타는 거다' '확실하게 믿을 만한 대화의 통로를 핵심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다' 등으로 이 전 기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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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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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라면 한 검사장이 취재에 관여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다. 하지만 수사팀은 이같은 녹음 파일도 실제 육성으로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증되지 않은 '전문'인 셈이다. 심지어 이 전 기자 측은 한 검사장이 아닌 대역을 썼다는 입장이다.

결국 수사팀이 이 전 기자를 재판에 넘기면서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못한 데에는 이처럼 공모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또 위법 증거수집과 '육탄 압수수색' 등 논란을 빚으며 수사팀이 막판까지 이 전 기자의 노트북을 재차 포렌식한 것도 '스모킹 건'을 찾지 못했다는 압박감에서 나타난 일련의 과정이라고 보는 의견들이 적지 않다.

한 검사장 측 변호인은 "이 전 기자도 본인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녹음 파일이 애초에 없고 (공소장 내용은) 전부 소설이다"며 "한 검사장 이름을 명시했기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전 기자 측 변호인도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논의한) 녹음 파일 자체가 없다"며 "기소 당사자인 이 전 기자의 범죄 사실보다 한 검사장의 공모 정황이 더 많이 적시된 기형적인 공소장이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에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뭔가 증거 관계로 입증이 가능하니 포함시키지 않았겠냐"며 "다만 그 증거 내용이나 종류가 현재 상황에서는 한 검사장의 조사 없이 공모 혐의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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