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88억 중 2억만 할머니에 쓴 나눔의 집…국민 기망 '사기'(종합)

댓글 9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 7월 6일~22일 나눔의 집 법인 및 산하시설 조사

법인, 시설 구분 없이 '주먹구구' 운영 실태 적발

"혼나봐야 한다" 간병인의 의한 정서 학대 정황

할머니들 생활과 투쟁의 역사 담긴 기록물은 '방치'

양로시설로도 C등급, 전국 하위 25%수준

CBS노컷뉴스 윤철원 기자

노컷뉴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금 운용 논란이 제기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거주시설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시)이 5년 동안 88억 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집하고도 할머니들을 위해서는 2억 원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기망한 '사기'"…88억 중 2억만 할머니들에 사용

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송기춘 공동단장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나눔의 집을 운영해온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수십억 원의 후원금을 모집한 뒤 이를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용하지 않고 땅을 사는 데 쓰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쌓아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송 단장은 "나눔의 집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을 위한 후원금 홍보를 했으며 여러 기관에도 후원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지난 5년간 88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집했다"며 "이 과정에서 나눔의 집 법인이나 시설은 기부금품법에 의한 모집등록을 하지 않았고 후원금의 액수와 사용내역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며, 등록청의 업무검사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천만 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는 등록청(10억 원 초과인 경우 행정안전부)에 등록해야 한다.

국민들이 후원한 돈은 나눔의 집 시설이 아니라 운영법인 계좌에 입금됐다.

노컷뉴스

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송기춘 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이 나눔의 집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 88억여 원 중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는 나눔의 집 양로시설로 보낸 금액(시설 전출금)은 2.3%인 2억 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할머니들을 위한 직접 경비가 아닌 시설 운영을 위한 간접경비로 지출된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운영법인이 재산조성비로 사용한 후원금은 26억여 원으로 파악됐다.

재산조성비는 토지매입과 생활관 증축공사, 유물전시관 및 추모관 신축비, 추모공원 조성비 등으로 쓰였다.

나머지 후원금은 이사회 회의록 및 예산서 등을 살펴봤을 때 국제평화인권센터, 요양원 건립 등을 위해 비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민관합동조사단은 설명했다.

이에 대해 송 단장은 "이같은 행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을 취득한, 재산을 취득한 행위로써 상습적인 사기, 업무상 횡령과 배임이며, 액수에 따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법인, 시설 구분 없이 '주먹구구' 운영 실태 적발

법인과 시설도 명확한 구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온 것으로 조사됐다.

송 단장은 "학교 법인의 회계와 학교의 회계가 구분돼야 하는 것이 원칙인 것처럼 사회복지 법인에도 법인과 시설의 운영과 회계는 엄격히 구분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러나 나눔의 집에서는 국고보조에 의해 운영되는 시설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이 시설과 법인의 업무를 모두 수행했으며, 법인에 관한 행정문서가 시설장의 명의로 발송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법인 산하에는 사회복지법인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국제평화인권센터'를 두고 있는데, 이 기구는 별도의 정관과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경기도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되어 있으나, 최근 4년 이상 어떤 활동실적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사회 의결 과정에 부당행위도 조사과정에서 확인됐다.

나눔의 집은 법인 정관상 이사의 제척제도를 두고 있는데도 이사 후보자가 자신을 이사로 선임하는 과정에 참여해 이사로 의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3명이 자신들의 이사 선임에 관한 안건 의결에 참여했는데 이들을 제외하면 개의정족수가 미달하는데도 회의가 진행됐다.

노컷뉴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보이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송 단장은 "이사회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외이사의 선임 자체도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며 "또 이사회 회의록상 간인이 서로 맞지 않는 등 회의록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는 혐의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혼나봐야 한다" 간병인의 의한 정서 학대 정황

할머니에 대한 정서적 학대 정황도 발견됐다.

간병인은 "할머니, 갖다 버린다", "혼나봐야 한다" 등 언어폭력을 가했고, 특히 의사소통과 거동이 불가능한 중증환자 할머니에게 집중됐다고 송 단장은 설명했다.

이어 "현재 나눔의 집 시설장은 A 할머니가 일종의 인지 능력의 하락 상태인 '섬망상태'에 있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씀에 '효력이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A 할머니를 언론에 노출시켜 시설에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노컷뉴스

국가지정기록물 제8호인 할머니들의 유품이 나눔의집 교육관 2층 베란다에 방치돼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사단은 또 할머니들이 의료적 방임 상태로 생활해 온 것으로 판단했다.

송 단장은 "할머니들은 90세 이상의 초고령이고 일부는 와상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자'를 대상으로 설치된 '양로시설'에 법인의 별도 지원이 없이 지내왔다"며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은 본인들에게 필요한 의료 인력과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공간에서, 자유로운 외출과 이동을 하지 못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고 꼬집었다.

◇할머니들 생활과 투쟁의 역사 담긴 기록물은 '방치'

할머니들의 생활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 방치되는 사례도 확인됐다.

입·퇴소자 명단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할머니들의 그림과 사진, 국민들의 응원 편지 등을 포댓자루나 비닐에 넣어 건물 베란다에 방치했다.

이 중에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자료도 있었다. 제1역사관에 전시 중인 원본 기록물은 습도 조절이 되지 않아 훼손되고 있었고, 제2역사관은 부실한 바닥공사로 바닥 면이 들고 일어나 안전이 우려되는 상태였다.

법인직원인 간병인이 조사단과 할머니의 면담 과정을 불법 녹음하기도 했다.

노컷뉴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는 추후 민관합동조사단으로부터 최종 조사 결과를 받아 검토한 뒤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처분할 예정이다.

송 단장은 "할머니들의 삶이 최대한 존중받고, 할머니들의 기록이 소중히 보존되는 것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가 이 분들이 많은 후원금 속에서 굉장히 편안한 생활을 하실 것으로 생각하지만 2018년 사회복지시설 평가결과 양로시설로써도 C등급을 받았고, 이것은 전국 하위 25%에 해당되는 그런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 나눔의 집과 불교계가 나서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했다"며 "그러나 법인과 시설 운영에서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전문가와 시민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경기도와 광주시는 그 정상화 방안이 잘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민관합동조사에서 드러난 나눔의 집 법인이나 시설의 여러 법령 위반행위 등은 사법기관의 수사를 통해 더욱 명백하게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은 지난달 6일부터 22일까지 행정과 시설 운영, 회계, 인권, 역사적 가치 등 4개 반으로 나눠 나눔의 집 운영법인과 나눔의 집 시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및 국제평화인권센터 등에 대해 조사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영선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정희시 경기도의회 의원, 이병우 경기도 복지국장을 공동단장으로 경기도와 광주시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1992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에는 현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5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이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95세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