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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섬진강 수계 줄줄이 '물바다'… 수재민들 "수위조절 실패가 화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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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10일 오후 전북 남원시 제방 유실 피해·복구 현장인 섬진강 (구)금곡교 일대에 떠내려온 부유 쓰레기가 가득하다. 연합뉴스


‘단순히 천재지변 때문인가.’

지난 7∼9일 전남북·경남 섬진강 수계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홍수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하면서 영산감댐 방류를 놓고 수재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수해의 일차적 원인은 집중호우 때문이지만, 섬진강댐의 방류 시기 조절 실패로 뒤늦게 한꺼번에 많은 물을 흘려보내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한국수자원공사과 영산강홍수통제소는 등 관계기관은 이번 물난리 원인이 이틀간 무려 500㎜가 넘는 폭우에 기이한 천재지변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섬진강 수계 3개道 침수 피해는 방류 조절 실패 때문”

10일 전남북·경남도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전날까지 영산강 수계 지역에는 누적 강수량을 기준으로 500㎜ 안팎의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와 침수 등으로 총 1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또 주택 1800여동과 농작물 1만4700㏊가 파손·침수됐다. 상가·비닐하우스·축사 등 수백동도 물에 잠겼다.

전북 남원시 금지면 일대 수해 주민들은 “이번 침수 피해는 지난 8일 오후 1시쯤 귀석리에서 발생한 제방 붕괴 사고 때문”이라며 “7일부터 집중된 호우로 강물이 대거 불어난 가운데 섬진강댐이 방류량을 늘려 강물이 더욱 불어나 피해가 가중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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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마을의 물이 빠져나간 10일 마을 어귀에 쓰지 못하게 된 가재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뉴시스


붕괴된 제방은 섬진강 중류 금곡교 인근의 비교적 완만한 100여m 구간으로,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제방길 부근까지 차올라 수압을 견디지 못해 일부가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제방 붕괴 지점은 섬진강 상류에서 전북 임실 섬진강댐 방류수와 섞인 섬진강과 장수 동화댐 방류수가 지리산 계곡물과 만나 남원 시내를 지나는 요천 합류지점 부근이어서 피해가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제방이 무너지자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밀려든 강물은 일대 주택 70여 가구와 농경지와 비닐하우스 등 1000㏊를 집어삼켰다. 인접한 상신·용전·상귀·하도·귀석·장승·대성·입촌 등 8개 마을도 물바다로 변해 주민 3000여명이 몸만 빠져나와 임시 대피소에 머물었다. 남원지역은 이곳을 포함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평균 447.3㎜의 폭우가 쏟아져 사유시설 1471건과 공공시설 109건 등 총 1580건의 피해가 났다.

섬진강댐 인근에 자리한 순창군 유등면 외이마을도 하천이 범람해 20여 가구 전체가 지붕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흙탕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섬진강 하류인 인근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 구례에서는 섬진강 강물이 범람해 읍내 절반가량이 잠겼고 곡성군 고달면 일대도 범람으로 농경지와 주택 등이 침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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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이 10일 제5호 태풍 '장미' 북상에도 화개면 화개장터 일대와 하동읍 침수지역에 복구인력 720여명과 장비를 투입해 이틀째 복구 작업을 벌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하동군 화개면 지역에서는 지난 8일 최대 450㎜ 폭우가 쏟아졌지만, 섬진강으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화개장터 내 상가 208동이 침수되고 13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지난 7∼9일 남해 바닷물 수위는 10∼12물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만큼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의 유입 시간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댐 인근 외이마을 한 주민은 “여름 시작부터 많은 양의 강우가 예보됐고 50여일 가까이 강수가 지속됐는데도 사전 방류를 통해 호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최근 들어서야 집중호우가 쏟아지자 수위 조절 차원에서 대량의 물을 서둘러 방류한 상황을 지켜봤다”고 꼬집었다.

남원 금지면 상귀마을 주민 김모(56)는 “집중호우도 문제지만 섬진강댐에서 한꺼 번에 방류한 많은 물이 중하류에 몰려 강물이 대거 불어나고 유속이 빨라져 제방 붕괴와 침수 피해가 확산됐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어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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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흘 동안 내린 집중호우로 큰 침수 피해를 본 10일 전북 남원시 송동면 한 축사에 집기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연합뉴스


◆수공 “예상치 못한 폭우가 원인, 방류 영향은 글쎄”

수공은 이번 수해 원인을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 때문으로 꼽았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폭우가 쏟아져 홍수위 조절을 위한 긴급 조치였다는 것이 수공 섬진강지사 측 설명이다. 섬진강댐은 섬진강 최상류인 전북 임실군에 1968년 건설한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총저수용량은 4억6600만t이다.

영·섬유역본부 섬진강지사에 따르면 섬진강댐은 호남지역에 폭우가 쏟아지기 전날인 지난 7일까지 간간이 내린 장맛비로 유입수가 늘자 초당 600t가량 방류하며 수위를 조절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6시30분쯤 댐 수위가 급격히 올라 계획홍수위(197.7m)에 육박한 196.77m를 기록하자 수문을 추가로 열어 방류량을 초당 1000t으로 늘렸다.

그런데도 강수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되레 시간당 최고 70㎜에 이르는 폭우가 지속되면서 이날 저수량이 계획홍수위를 넘어서 197.89m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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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지난 9일 오후 전북 임실군 소재 한국 수자원공사를 방문해 집중호우로 인한 섬진강댐 운영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그러자 섬진강지사는 방류량을 1500t, 1868t 등으로 단계적으로 늘려 다음 날 아침 7시30분까지 25시간 동안 많은 물을 하류로 흘려보냈다. 그런데도 댐수위는 1m 남짓 줄어든 196.23m에 그쳤다. 그만큼 최근 많은 물을 가둬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섬진강댐은 최고 수위를 2018년까지 180m대를 유지했지만, 이후 최근까지는 190m대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섬진강댐을 관리 중인 수공은 지난달에서야 같은 달 23일부터 이달 14일까지 4주가량 방류 기간을 정하고 방류량을 당초 초당 1000t에서 최대 2500t까지 늘릴 계획을 세워 영산강홍수통제소로부터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공 측은 “섬진강 수계 지역 수해는 미처 예상치 못한 기록적인 폭우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이며 댐 방류도 저수량 증가로 불가피한 조처였다”며 “댐 목표 수위는 강우량 전망과 유지용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번 방류에 대해서는 향후 입장을 정리해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순창·남원·구례=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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