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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연락끊긴 자식 있습니까?’ 생계급여 받지만, 의료급여 못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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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기초생활보장 계획 의결

생계급여 기준, 2022년 폐지

신규수급자, 26만2천명 예상

자녀 9억 초과 집 보유 등 땐 제외

의료급여 ‘사각’ 메꾸긴 역부족


한겨레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61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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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빈곤층 생계 보장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 축인 의료급여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남겨두기로 했다. 일부 기준을 완화해 의료급여 수급자는 늘어날 전망이지만,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2022년까지 대부분 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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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계급여는 ‘사각지대’ 없애지만, 의료급여는 그대로


보건복지부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61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어 내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방향과 내용을 담은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를 보면, 소득·재산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인 사람한테 지급하는 생계급여는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어진다. 이에 따라 2021년엔 노인과 한부모 가구, 2022년엔 그 밖의 가구에서 연락이 닿지 않거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부양의무자가 연소득이 1억원이 넘거나 9억원을 초과하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계속 적용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런 변화로 늘어날 생계급여 수급자를 26만2천명으로 예상했다. 또 부양의무자가 부담하는 일정한 ‘부양비’를 수급권자 소득인정액에 포함시켜 급여를 차감했던 제도도 함께 폐지돼, 6만7천명의 생계급여 수준이 약 13만2천원씩 인상될 전망이다.

소득·재산이 기준 중위소득의 40% 이하인 사람이 대상인 의료급여에선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돼 존치된다. 앞서 2019년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 장애인(장애인연금 수급자)이 있는 경우에 이어, 2022년부터는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있을 때도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른 신규 수급자는 11만명으로 예상된다. 이와 별도로, 부양비와 수급권자 소득·재산 반영 기준을 개선해 늘어날 수급자(8만9천명)를 포함하면, 모두 19만9천명이 신규 의료급여 대상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는 3년 전 발표한 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이미 담겨 있던 것이어서, 이번에 진전된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 재산 반영 기준의 구체적인 개선 방안도 이번에 함께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자동차를 재산으로 환산할 때 낮은 환산율(4.17%)을 적용하는 기준은 급여별로 차등완화해, 생계·의료급여는 자동차 가액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주거·교육급여는 1600㏄ 가액 150만원에서 2000㏄ 500만원으로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다자녀 가구의 기준도 신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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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층도 건강보험’ 정부 접근은 “빈곤층 이해 부족”


부양의무자 기준이 생계급여에선 사실상 폐지되지만 의료급여에 이를 남겨둠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공약 파기’의 또 다른 사례를 남기게 됐다. 문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집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명시돼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해 4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년에 수립하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이날 중앙생활보장위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직접 부양의무자 폐지를 언급한 바가 없다. 그 조건 완화는 생계급여에 초점이 있지, 의료급여를 말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급여를 받으려면 부양의무자가 있는지 확인을 거치도록 한 결정과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계획을 통해 부양능력이 없는 사람은 부양의무자에서 사실상 다 빠진다. 감당할 소득이나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만 부양의무자로 남게 되는데, 이분들 문제는 건강보험으로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꼭 저소득층 본인의 의료급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피부양자’나 본인의 건강보험을 통해서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장관도 “저소득층 의료서비스 확보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부양의무자 폐지가 아니라) 건강보험 가입 때 부담하는 본인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접근은 빈곤층의 ‘기초생활’을 정부가 보장하는 이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한다는 점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2차 종합계획대로 수급자가 19만9천명 늘어난다 하더라도, 이는 2018년 현재 수급 자격이 되는데도 의무부양자 때문에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73만명의 27%에 불과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건강보험으로 본인부담금이 1만~2만원이어도 빈곤층에게는 굉장히 큰 돈이어서 결국 치료를 미루게 되는 사유가 된다. 빈곤층이나 건강보험 체납자·미가입자에게 의료급여는 건강보험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복지”라며 “정부 발상은 빈곤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줄 뿐으로, 의료급여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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