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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박용택, 꾸준했지만 韓 야구사에 미친 강렬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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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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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 LG 베테랑 좌타자 박용택은 최근 은퇴 투어 논의가 진행되면서 팬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프로야구 LG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41)의 '은퇴 투어' 논란이 뜨겁다.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접는 베테랑 스타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추진 중인데 국가대표 경험도 많지 않은 박용택의 은퇴 투어는 적절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박용택의 은퇴 투어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LG 구단에 먼저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선수협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고, 다른 9개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협조를 구하는 중이다.

은퇴 투어란 선수 생활 마무리를 앞둔 선수가 다른 구단들에 대한 마지막 원정에서 기념식을 열고 선물을 받는 등의 행사다. 해당 종목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운 전설에 대한 예우다.

프로야구에서는 2017년 처음으로 이승엽(44) 현 KBO 홍보대사에 대한 은퇴 투어가 열린 바 있다. 메이저리그(MLB)에서는 뉴욕 양키스 전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51)와 캡틴 데릭 지터 등에게 은퇴 투어를 선물한 바 있다.

한국 프로농구에서는 김주성(41) 현 DB 코치가 2017-2018시즌 은퇴 투어를 진행했다. 김주성은 16시즌 통산 3회 우승과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 2회를 일궜다. 2002년 부산, 2014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했다.

선수협과 LG 구단은 박용택이 은퇴 투어를 치르기에 충분한 선수라는 입장이다. LG 류중일 감독은 지난 8일 키움과 고척 원정을 앞두고 "박용택은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라면서 "은퇴 투어를 하는 쪽이 맞지 않나"라는 의견을 밝혔다.

박용택은 지난 2002년 LG에 입단해 한 구단에서만 뛰었다. 통산 2178경기 타율 3할8리 211홈런 1179타점 1254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2478안타는 양준혁 해설위원(51)의 2318개를 넘은 역대 통산 최다 기록이다.

또 박용택은 2017년 역대 최초로 6년 연속 150안타 이상을 기록한 데 이어 2018년에도 역시 최초의 7년 연속 150안타 이상의 금자탑을 쌓았다. KBO에서 시상하는 개인 타이틀은 3번 수상했다. 2005년 도루(43개)와 득점(90개) 2관왕에 오른 박용택은 2009년 타격왕(3할7푼2리)에 올랐다. 골든글러브는 외야수로 3번, 지명타자로 1번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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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승엽(왼쪽)이 2017년 자신의 마지막 잠실 경기인 LG와 원정에 앞서 신문범 LG 구단 사장으로부터 은퇴 선물을 받는 모습.(사진=삼성)


임팩트로만 보면 3년 전 은퇴 투어를 했던 이승엽과 다소 비교는 된다. 이승엽은 리그 MVP만 5번, 홈런왕도 5차례나 올랐다. 특히 2003년에는 56홈런을 날리며 일본 오다사하루의 아시아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홈런과 안타의 파급력이 주는 차이처럼 박용택은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KBO 리그를 떠나 한국 야구 전체에 미친 영향력에서 차이가 난다. 이승엽은 무수한 국제대회,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존재감을 뽐내며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결승타를 뽑아낸 이승엽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에서 결승 2점 홈런, 야구 종가 미국전에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좌완 돈트렐 윌리스를 홈런으로 두들겼다. 한국은 WBC 4강 신화로 세계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이다. 이승엽은 당시 대표팀 4번 타자였지만 1할대 타율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그러나 일본과 준결승에서 8회 전율의 결승 2점 홈런을 날린 데 이어 결승에서는 아마 최강 쿠바를 상대로 역시 결승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 야구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견인했다.

이런 활약에 이승엽에게는 기꺼이 '국민 타자'라는 영예로운 별명이 허락됐다. 그랬기에 이승엽의 은퇴 투어에 논란의 여지는 없었다. 2005년 지바 롯데의 일본 시리즈 우승 견인과 이후 최고 명문 요미우리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한국 야구를 알렸던 일본 무대 업적은 빼고도 말이다.

하지만 박용택에게 이런 강렬한 장면은 좀처럼 떠올리기 어렵다. 박용택은 프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기 시작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국가대표 경력도 2006년 WBC가 유일했다. 당시 박용택은 전부 대타로만 출전했다.

물론 국가대표의 업적이 KBO 리그 선수의 경력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얻게 된 데는 국제대회 성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WBC 4강과 준우승(2009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으로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공인받은 이후 KBO 리그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런 만큼 국가대표로서 활약은 그 선수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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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BC에서 이종범(왼쪽)이 일본과 2라운드 8회 2타점 적시타를 때린 뒤 바람처럼 내달리는 모습과 이 경기 승리로 4강을 확정지은 뒤 서재응이 태극기를 에인절스타디움 마운드에 꽂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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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은퇴 투어 논란이 일면서 회자되는 전설 중 이종범 전 LG 코치(50)도 있다. 이 코치는 KBO 리그 16시즌 통산 1706경기 타율 2할9푼7리 194홈런 730타점 1100득점을 기록했다. 박용택과 비교하면 통산 기록에서 차이가 꽤 난다.

하지만 적잖은 팬들은 "이종범도 못했는데…"라며 박용택의 은퇴 투어를 반대한다. 이 코치 역시 한국 야구 역사에 강렬한 기억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1993년 데뷔하자마자 '바람의 아들'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KS) MVP에 오른 이 코치는 이듬해 124경기 타율 3할9푼3리 196안타 84도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냈다. 1996년부터 2년 연속 KS 우승을 이끌었고, 1997년에는 30홈런-64도루로 30-30클럽에도 가입했다.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했다. 이 코치는 2006년 WBC 본선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제 결승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이 코치의 한 방으로 대표팀은 미국 LA 에인절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꽂을 수 있었다.

차기 은퇴 투어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선수가 롯데 이대호(38)다. 이대호는 KBO 리그에서 2006년 트리플 크라운(타율, 홈런, 타점)에 이어 2010년 도루를 제외하고 전대미문의 타격 7관왕의 대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장 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도 맹활약했다. 이대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전 동점 홈런 등으로 9전승 금메달 신화에 힘을 보탰고, 특히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조선의 4번 타자'라는 영광의 별명을 얻었다. 일본과 4강전에서 9회 극적인 역전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기 때문이다. 역시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이었다. 초대 프리미어12 우승을 위해 야심차게 대회를 개최한 일본은 이대호의 한 방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정말 아쉽게도 박용택에게는 이런 강렬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다. 국가대표를 떠나 KBO 리그에서도 쉽지 않다. 박용택이 입단한 이후 소속팀 LG가 가장 큰 무대인 KS에서 우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용택의 유일한 KS는 신인이던 2002년이었다. 당시 박용택은 6경기에서 타율 1할3푼(23타수 3안타) 3타점 2도루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2002년은 이승엽이 삼성의 첫 KS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즌이었다. 당시 상대가 LG였다. 이승엽은 LG와 6차전에서 당시 최강 마무리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날렸다. 이어 마해영의 끝내기포로 삼성은 숙원이던 KS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박용택은 고스란히 지켜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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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2017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지명타자 부문에 선정된 LG 박용택이 소감을 말하는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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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용택의 업적은 KBO 역사에 남을 만하다. 박용택처럼 꾸준하게 활약한 선수는 드물다. 특히 한국 나이로 불혹이던 2018년 7년 연속 150안타 기록을 세운 것은 박용택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KBO 차원의 은퇴 투어는 또 다른 문제다. 누가 봐도 납득이 가야 한다. LG에만 국한될 게 아니라 다른 구단 팬들도 인정하는 모양새가 돼야 한다. LG 차원에서 펼치는 성대한 은퇴식이라면 다른 구단 팬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은퇴 투어라면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어쩌면 KBO는 물론 한국 야구 전체의 위상과도 관련된 사안인 까닭이다. 야구를 잘 모르는 국민이라도 "이승엽"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종범 전 코치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러나 박용택에게도 같은 반응이 나올지는 솔직히 야구 담당 기자라고 해도 장담하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KBO 리그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자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는 은퇴 투어가 전 세계 팬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결국 이 논란의 종지부는 LG 구단, 아니 박용택 본인이 찍어야 한다. 부상 재활을 마치고 이번 주 복귀할 예정인 박용택.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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