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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2500억 계약금 소송 앞두고 명분쌓기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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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접점 찾기 마지막 기회

업계 "합의 가능성 크지 않아"

계약금 소송 위한 명분쌓기 전망도

2500억 반환 놓고 법정공방 불가피

이데일리

(그래픽=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아시아나항공 매각(M&A) ‘노딜 선언’을 앞두고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꺼낸 ‘대면협상’ 카드가 마지막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이 줄곧 만나서 얘기하자고 요구한 만큼 막판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분위기다. 인수가 무산되면 양측은 계약금 2500억원을 놓고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접점 못 찾는 HDC와 금호..막판 극적합의?

HDC현산은 9일 금호산업의 대면협상 요구를 받아들이며 협상의 격을 대표이사급으로 높이자고 역제안했다. 금호가 못박은 협상 데드라인(11일)을 이틀 앞두고 금호의 대면협상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HDC현산은 그간 금호와 채권단의 대면협상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지난 6일에는 “대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며 진정성을 거론하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 것”이라며 채권단을 비난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현산의 이런 행동이 아시아나 M&A에서 발을 빼는 수순으로 해석했다.

HDC현산이 다시 협상 의지를 내비치면서 무산 가능성이 커졌던 아사이나 항공 M&A가 반전의 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특히 지난주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 위기에도 2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도 협상에 긍정적 기류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단에서는 여전히 HDC현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금호와 채권단이 부정적인 재실사를 요구조건으로 내걸어서다. 앞서 금호와 채권단은 HDC현산의 12주 재실사 요구에 대해 “지난해 이미 7주간 실사를 진행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시간만 허비한 채 현산측에 끌려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계약무산에 따른 모든 법적 책임은 HDC현산에 있다”고 말했다.

대면협상이 성사된다고 해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채권단을 이끄는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과 HDC현산의 오너인 정몽규 회장이 두 차례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일단 HDC현산의 최종의사를 확인한 뒤 실제 계약해제 통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일단 현산이 만나자는 입장을 전달했으니 진의를 파악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시 대우조선해양 계약금 소송 재연될 듯

양측이 계약을 놓고 힘겨루기를 지속하는 것은 앞으로 진행될 계약금 반환소송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명분쌓기’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HDC현산은 공식적으론 반환소송을 언급한 적이 없지만 금호산업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행보증금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채권단 역시 “계약금 반환소송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보고 있다. HDC현산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금호산업과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인수가액 10%를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이행보증금은 에스크로(조건부 인출가능) 계좌에 있다. 아시아나 이행보증금 반환소송은 과거 한화그룹이 산업은행을 상대로 한 대우조선해양 인수무산 이행보조금 반환소송과 유사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는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산업은행의 보유 지분(9639만주)을 6조3200억원에 매입키로 하고 315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우선지급했다. 최종계약은 그해 12월 29일 맺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계약이 지연돼 2009년 6월 최종 결렬되자 산업은행은 이행보증금을 가져갔다. 한화 측은 2009년 11월 반환소송을 냈다.

한화는 1심과 2심에서 패소했지만 대법원에서 뒤집었다. 대법원은 ‘확인 실사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한화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행보조금 전액 몰취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은 2018년 1월 이행보증금의 40%인 1260억원과 지연이자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본 계약 체결 전에 무산됐으나 아시아나 인수 건은 본 계약이 체결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상황 악화가 ‘중대한 부정적 영향’(Material Adverse Effect·MAE)에 해당할 지 여부도 관건이다. MAE 조항은 통상 인수합병 계약에서 매수인이 책임질 수 없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계약을 해제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아시아나 인수계약에는 이 조항이 있다. HDC현산은 중대한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지만 금호산업은 부인한다. 금호산업은 “코로나19 사태 등 국제적 환경의 변화로서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들이 속한 일반적인 환경 변화에 해당한다”고 반박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주식매매계약(SPA) 세부 내용을 모두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면서도 “HDC현산이 실제로 소송에 나서면 일부 승소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한화가 제기한 대우조선해양 이행보증금 소송은 8년이 지나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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