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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힐링 노원? 킬링 노원" 태릉 때문에 화난 주민들 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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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에도 500명 나와

"주민무시 막장개발"

“비가 잦아들고 있네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오세요” “우비로 완전 무장하고 아기 들쳐업고 지금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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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에 모인 시민들이 정부의 수도권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 관련해 태릉 그린벨트 훼손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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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부터 ‘#태릉개발반대 #그린벨트수호’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모인 사람들은 분주하게 날씨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인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활용한다는 정부의 부동산 공급 대책에 반대하는 노원구민 등 760여 명이 참여한 채팅방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쯤부터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에 모여 태릉골프장 개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우산이 뒤집히고 사회자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약 500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태릉 훼손 결사반대’ ‘지키자 그린벨트’ 등의 손팻말을 들고, “주민 무시 막장개발, 노원주민은 분노한다” “오승록이 공약한 힐링노원 어디 갔냐, 노원4적 자행하는 킬링노원” 등의 구호도 외쳤다. ‘노원구를 무시한 난개발 철회하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투명 우산 안쪽이나 우비를 쓴 등에 부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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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한 집회 참가자가 투명 우산 안쪽에 '노원구를 무시한 난개발 철회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인 사진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태릉개발반대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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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아파트 공급에만 혈안이 된 정부가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자연을 훼손하려고 한다”고 했다. 경기 남양주에서 온 이정인(38)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릉을 ‘이미 훼손된 그린벨트’라고 하는 정부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며 “한 정권에서 부동산 대책이 23개나 발표되고, 강남의 그린벨트를 보존하겠다고 발표한 지 며칠 뒤에 강북의 그린벨트는 훼손하겠다고 발표하는 이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냐”고 했다.

노원구가 이미 교통난이 심하고 기반 시설이 부족한 점도 반대 이유로 나왔다. 노원구 상계동 주민 이모(70)씨는 “지금도 출근하는 데 몇 시간씩 걸리는 데 1만 세대 아파트를 더 지으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했다. 하계동에 사는 윤모(45)씨는 “노원구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해 비가 많이 오지만 아들들과 함께 나왔다”며 “골프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자연이 잘 보존된 곳까지 개발하려는 데 화가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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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노원점 입구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노원구가 호구냐!"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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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에 사는 정치인들도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 상계동에 사는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이번 개발이 무계획적이고 졸속이라는 것은 여러 지점에서 알 수 있다”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이미 지자체와 협의를 마쳤다고 했는데,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어떤 반대를 하고 어떤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쳤는지 주민들에게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임재혁 전 노원구의회 의원은 “150년된 소나무 없애가면서 태릉에 아파트 숲을 만들어야 하나”며 “지금도 외지로 출퇴근하기가 힘든 노원구에 1만 세대가 더 들어오면 교통 지옥이 될 것이 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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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주최 측에 제출된 어린이가 쓴 손편지 중 하나. "숲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 아래 숲이 그려져 있다. /태릉개발반대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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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는 오후 3시쯤까지 계속됐다. 이날 집회 주최측은 그린벨트 개발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모으고 서명을 받기도 했다. 주최 측은 “‘그린벨트를 지켜달라’는 아이들의 그림 편지, ‘나도 노원구민인데 왜 얘기는 듣지 않나’는 내용 등이 담긴 손편지 약 100장이 모였다”며 “정리해서 적절한 곳에 제출할 계획이고, 집회는 매 주말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건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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