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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권력은 짧고 아파트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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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다주택 수석 사의에 들끓는 여론

노영민 비서실장과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 5명의 일괄 사의 표명은 7일 오후 전격적으로 발표됐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1시 30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이 사실을 알렸다. 다른 청와대 참모 대부분은 발표 직전까지 이들의 사의 표명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 실장 등의 사의 표명 이유로 "최근 상황에 대한 종합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대응 등도 문제가 됐지만, 결국 잇단 부동산 정책 실패와 최근 청와대 고위 참모들의 다주택 보유 논란이 사의 표명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노 실장으로선 모든 국정 이슈가 참모들의 다주택 문제에 묻혀버리는 현 상황이 괴로웠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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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21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부동산 관련 규제 법안들을 밀어붙이며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규정한 상황에서도 청와대 참모들이 계속 다주택자로 남아 있자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앞서 노 실장은 작년 12월 16일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며 "다주택자는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면 이른 시일 안에 1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 가운데 이날 사의를 표한 김조원 민정수석, 김외숙 인사수석,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을 포함한 8명은 여전히 다주택자다. 황덕순 일자리수석과 여현호 국정홍보비서관, 이지수 해외언론비서관, 이남구 공직기강비서관, 석종훈 중소벤처비서관이 포함된다. 청와대는 작년 12월엔 다주택자들의 주택 처분 시한을 '6개월'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7월 초가 되자 "이달 중 처분을 강력 권고했다"고 했고, 7월 말엔 또다시 "8월 말까지 매매계약서를 내라고 통보했다"며 입장을 계속 바꿨다.

이 과정에서 서울 강남권 2주택자인 김조원 수석은 자신의 잠실 갤러리아팰리스 47평형(전용면적 123㎡) 아파트를 역대 실거래 최고가보다 2억1000만원, 같은 아파트 다른 매물보다는 최고 4억원 비싼 가격(22억원)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비판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6일 이 매물을 거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같은 날 "통상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얼마에 팔아달라(고 하는 것을)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노 실장도 주택 처분 과정에서 '똘똘한 한 채'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는 지난달 "노 실장이 서울 반포 아파트를 매각할 것"이라고 했다가 45분 만에 청주 아파트로 정정했다. 노 실장은 6일 만에 "국민에게 송구하다"며 서울 아파트도 팔겠다고 했지만, 그 일로 대변인이 사의까지 표명했다. 인터넷과 SNS에선 "이런 코미디 같은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적 분노가 갈수록 커지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청와대의 총체적 대응 부실"이란 불만이 나왔다.

노 실장 등이 이날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한 뒤에도 정치권과 인터넷 등에선 "결국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이 '직(職)' 대신 '집'을 택해 사퇴하려는 것" "청와대 고위직은 '아파트가 먼저'인 세상에 살고 있었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미래통합당은 이들의 사의 표명에 관해 "대충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했다. 황보승희 의원은 페이스북에 "결국 집이 최고"라면서 "집값 잡겠다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만들더니 부동산 불패만 입증하고 떠나네"라고 썼다.

네티즌들은 "무엇이 중헌디. 대통령보다 집이 중허지" "(잠실 아파트가) 도저히 아까워서 팔 수 없었던 김조원" "권력은 짧고 강남 아파트는 영원했다" 등의 글로 비판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향한 불만 글도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시그널" "다주택자를 범죄자 취급하더니 결국 부동산 정책 실패를 스스로 입증한 격"이라고 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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