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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주민들이 해고 막았지만···등떠밀려 떠나는 경비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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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해고 막아줬지만 돌아온 건…늘어난 업무·줄어든 급여

서울 SK북한산시티아파트, 주민들 대량해고 저지 한 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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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 김창길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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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명 중 8명 일 그만둬
이달 5~6명도 퇴사 예정
“노동조건 점점 더 나빠져
소송 엄두도 못 내 떠난다”

주민들의 반대로 경비노동자 대량해고를 막아냈던 서울 강북구 SK북한산시티아파트에서 지난달에만 8명의 경비원이 스스로 일터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경비원 감축안이 무산된 뒤 월급이 20만원 가까이 깎이는 등 노동조건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47개 동 3830가구인 이 아파트에서는 6월까지 87명의 경비노동자가 근무했다. 이 중 8명이 지난달 자진 퇴직했다. 경비원 A씨는 지난 4일 통화에서 “현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며 “이달 말쯤 나를 포함해 5~6명의 경비원이 더 그만둘 것 같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5월 87명의 경비인력을 33명으로 줄이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폐쇄회로(CC)TV나 제설기를 설치해 경비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면, 그만큼 주민들의 관리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비원들이 분리수거 등 ‘경비 외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경비업법 계도기간이 올해 말 종료된다는 이유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이 “경비원들의 일방적 해고는 안 된다”고 막아섰다.

결국 입주자대표들은 ‘추후 사유가 생기면 변경할 수 있다’는 특약을 넣어 현 인원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이 경비인력 감축을 막아낸 건 2015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로부터 한 달, 경비원들은 왜 일터를 떠나기로 한 걸까. 기자가 만난 경비원들은 근로조건 악화를 이유로 들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6월 경비인력 유지를 결정하면서 야간 휴게시간을 1시간 늘렸다. 이에 따라 월급이 약 20만원 삭감됐다. 갑자기 근무초소가 바뀌며 주민들 얼굴을 새로 익혀야 했다. 외부차량 차단기 도입 이후엔 주민들의 민원을 받는 일도 늘었다.

일부 경비원들은 일련의 변화들을 입주자대표회의의 ‘갑질’로 받아들였다. 경비원 B씨는 “감축이 무산되니까 제 발로 나가도록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치가 시행된 이유에 대해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된 일이라 모른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장에게도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정작 영향을 받는 것은 주민들이다. 입주자대표를 지낸 D씨는 “경비원들의 근무종료시간이 갑자기 밤 11시에서 10시로 앞당겨진다고 하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경비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결국 사람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40~50명은 6월 경비원들의 휴게시간이 변경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생활과 밀접한 경비원 문제를 왜 주민들에게 묻지 않고 결정하느냐”며 입주자대표회의에 항의하기도 했다.

‘합리적 이유’가 없는 노동조건 악화는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도 있다. 실제 오래 일한 일부 경비원들은 소송이나 진정을 검토했다. 하지만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해 단념했다.

지난 2월 기존 용역업체와 아파트 간 계약이 만료된 이후 관리사무소와 한 달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한 것도 이들에겐 불리하다. 경비원들이 새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면 근로조건 변경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퇴사한 경비원 E씨는 “일년을 일했는데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노동청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해 소송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최종연 일과사람 변호사는 “그동안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 외 다른 인력을 최소화하면서 적은 비용으로 여러 일을 시키려다 보니 현 상태가 정착된 것”이라며 “감독권한을 가진 지방경찰청에서 적극 감독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윤지·이창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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