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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23인조 中도굴단...낮엔 식당 운영, 밤엔 터널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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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중국의 23인조 도굴꾼이 유적지에서 훔친 금으로 만든 관/검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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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山西)성에서 낮에는 식당을 운영하고 밤에는 땅굴을 파는 연막 작전으로 문화재를 도굴한 23인조가 검거됐다. 5일 검찰일보·베이징완보 등에 따르면 웨이융강(52) 등 23명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산시성의 고탑(古塔) 6곳과 고분(古墳) 한 곳을 털어 중국 1급 문화재 4점 등 수십 점의 유물을 훔쳤다. 이들이 노린 곳들은 전부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문화 유산이었다. 범행을 주도한 웨이씨는 과거 수감 생활 동안 안면을 튼 동료 수감자들과 친척들을 모아 도굴단을 꾸렸다.

이들의 첫 범행은 ‘떡집 작전’이었다. 2011년 7월 도굴단은 범행 목표인 싱핑시 칭펀스탑(清梵寺塔) 옆에 가옥을 빌린 다음 착굴공사 업자들을 불러 ‘전통 떡집을 차리는데 온도가 낮은 지하 부엌이 필요하다’며 땅굴을 파게 했다. 이 범행으로 도굴단은 은으로 만든 아육왕탑 등 10여 점의 유물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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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23인조 도굴단이 직접 파내려간 땅굴의 모습/베이징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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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전 성공 이후 이들은 진짜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거짓말로 외부 업자를 불러 굴을 파게 하면 ‘보안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에서였다. 2013년 11월 북송 시대 유적인 타이탑(泰塔) 인근에 찐빵 가게를 냈다. 도굴단의 두목인 웨이씨가 땅굴 굴착을 지휘했다. 경위기(물체의 고도와 각도를 재는 장치)를 이용해 굴착 방향을 정해주면, 범행단이 직접 굴을 팠다. 한 달만에 타이탑의 불상과 은관 등의 유물을 빼냈다.

범행은 시간이 갈수록 영화처럼 스케일이 커졌다. 2015년 4월에는 산시성 빈저우시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카이위안스탑(開元寺塔)를 노렸다. 유적지 인근의 상가를 빌려 ‘촨샹스푸(川湘食府)’란 식당을 차렸다. 영업 허가를 받고, 인테리어를 하고, 요리사와 서빙 직원까지 고용해 차린 쓰촨 요리 전문점이었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도굴꾼들은 식당 화장실 옆의 비밀통로로 내려가 땅을 팠다. 동이 트는 새벽 4시면 파낸 흙을 마대에 담아 트럭에 숨겼다. 장장 6개월에 걸친 굴착 작전 끝에 이들의 식당은 카이위안스탑의 지하와 연결됐다. 금·은·동으로 만든 관(棺) 등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운 보물들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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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인조 도굴꾼이 훔친 문화재들. 왼쪽부터 금관, 석관, 봉황이 새겨진 화병, 동관이다. 중국 검찰일보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들 유물의 금전적 가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검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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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식당 창업자이자 도굴꾼이 된 이들은 결국 덜미를 잡혔다. 2018년 1월 산시성 빈현 공안국(경찰)이 이들을 붙잡아 기소했다. 산시성 셴양시법원은 최근 이들 일당에게 범행 경중에 따라 3~15년 실형 판결을 내렸다고 베이징완보가 5일 전했다.

재판 과정에서 도굴단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졌다. 이들은 총 6곳의 고탑과 한 곳의 고분을 털었는데 이중 4곳에서의 범행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셴양시인민검찰원 펑타오 부주임은 “유적지 두 곳은 다른 도굴단이 이들보다 먼저 다녀갔고, 한 곳은 지하 공간 자체가 없었다”며 “마지막 한 곳은 경찰에 붙잡히는 바람에 굴착을 끝내지 못한 곳”이라고 말했다.

중국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도굴꾼들은 연기에 푹 빠진 영화배우들 같았다”면서 “이들은 범행에 성공하고 땅굴을 메꾼 뒤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의심을 피했다”고 했다. 도굴단 23명 중 3명은 브레인 역할을 맡고, 나머지는 장물 처분과 도굴 작전에 참여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는 "식당 운영만으로도 피곤할텐데 도굴꾼들이 정말 부지런하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어떻게 퇴근한 밤에 땅굴을 팔 기운이 남아 있었을까"라는 글도 올라왔다. 베이징완보는 “23명의 도굴단은 사실상 중소기업 수준으로 체계적인 인력 운용 체제를 갖췄다”며 “이런 도굴단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유적지들은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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