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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모텔가자” 손목 잡아끈 상사…대법 “강제추행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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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직장 상사가 회식이 끝난 뒤 모텔에 가자며 후배 직원의 손목을 잡아끈 행위는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손목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부위가 아니고, 잡아끈 것만으로는 성적으로 의미가 없어 강제추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심 판결을 깬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A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2심 판결을 파기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회식을 마친 후 모텔에 같이 가자는 말에 후배 직원이 거절했는데도 강제로 손목을 잡아끌었다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후배 직원의 손 등을 만진 혐의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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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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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있고, A씨 행위가 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는 손목을 잡아끈 혐의 등 일부가 무죄로 바뀌었다. 형량은 1심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에서 벌금 300만원으로 낮아졌다.

2심 재판부는 “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면서 A씨의 행위는 ‘성희롱’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추행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3개의 판단 근거를 댔다. 손목은 그 자체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부위가 아니라고 했다. A씨가 손목을 잡아끈 것에서 더 나아가 피해자를 쓰다듬거나 안으려고 하는 등 성적 의미가 있는 다른 행동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거부해 모텔에 가지 않고 A씨를 택시에 태워 보낸 것을 보면 피해자가 A씨 행위에 반항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곤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모텔에 가자고 하면서 피해자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는 이미 성적인 동기가 내포돼 있어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피해자를 쓰다듬거나 안으려고 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만 성적으로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손목이라는 특정 신체부위를 기준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지 여부를 구별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입사한 지 약 3개월 된 신입사원이고 A씨는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장 상사라는 점, A씨가 동료 직원들과 밤늦게 회식을 마친 뒤 피해자와 단둘이 남게 되자 모텔에 가자면서 피해자 손목을 잡아끈 점을 고려하면 추행이 맞다고 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한다”며 “일반인에게도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추행”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A씨를 설득해 택시에 태워 보낸 사실은 강제추행죄 성립과 관련이 없다고 했다.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여야만 추행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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