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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에 항의하다 구속까지…꼴찌 삼미 ‘비운의 감독’ 김진영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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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유격수 ‘인천야구 대부’

장명부 30승 등 숱한 전설 남겨

중앙일보

김진영

김진영(사진) 전 삼미슈퍼스타즈 감독이 3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5세.

1935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삼미 초대 사령탑인 고(故) 박현식 전 감독과 함께 ‘인천 야구의 대부’로 통했다. 인천고 재학 당시 모교를 세 차례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어 인천이 낳은 최고의 야구 스타로 떠올랐다.

실업 야구 시절에는 육군, 교통부, 철도청 야구단에 몸담으면서 국가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남다른 근성으로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큰 부상으로 입원한 날 중요한 경기가 열리자,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대타 홈런을 친 뒤 병상으로 복귀한 일도 있다. 현역 은퇴 뒤엔 중앙대·인하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출범 2년째인 1983년,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 사령탑에 올랐다. 삼미가 승률 0.188(15승 65패)의 성적으로 프로 첫 시즌 꼴찌를 한 뒤였다. 삼미는 당시 거액 1억원을 투자해 재일교포 투수 장명부를 데려오고, 국가대표 출신 투수 임호균 등 선수 13명도 영입했다. 스카우트에 돈을 많이 써버려 해외 훈련을 떠날 수 없었다. 김 감독은 국내에서 비닐하우스 훈련장을 만들어 프로 사령탑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해 6월 1일 MBC 청룡과 잠실 경기에선 심판 판정에 거칠게 몸을 쓰며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구속까지 됐다. 김 감독이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되자 구단은 ‘일시 퇴진’ 징계를 내렸다. 1984년 김 감독은 삼미에 복귀했지만, 팀이 다시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1990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았지만 그해 8월 28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KBO리그 감독 통산 성적은 121승 8무 186패. 김 감독은 이후 야구계에 복귀하지 않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인천 태평양 돌핀스 간판스타 출신인 김경기(52) SPOTV 해설위원이 고인의 아들이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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