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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꼴찌에게 박수를’ 신화 남기고 퇴장한 ‘인천 야구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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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 별세

1983년 사령탑 ‘폭력 항의’로 구속까지


한겨레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의 김진연 감독. <한겨레> 자료사진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이 3일 오전 5시 미국 플로리다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

1935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인천을 대표하는 야구인이다. 인천고 재학 때 전국대회 우승을 3번 차지하며 인천 대표 야구 스타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실업팀 육군 경리단, 교통부, 철도청에서 뛰었다.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활약했다.

고인은 현역 은퇴 뒤 중앙대(1972∼79년)와 인하대(1981∼82년) 감독을 맡았고, 1983년 인천 연고팀 삼미 슈퍼스타즈 사령탑에 부임했다. 부임 첫해 에이스 장명부를 앞세워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전반기 2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굴곡도 있었다. 고인은 1983년 5월까지 팀을 1위로 끌어올렸으나 6월 ‘엠비시(MBC) 청룡’과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폭력을 행사했다가 퇴장당했다. 그런데 이튿날 ‘사회정화 차원에서 혼내주라’는 대통령(전두환)의 직접 지시로 그는 초유의 구속까지 당했다.

한겨레

김진영(오른쪽)은 6월 1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엠비시 청룡전’에서 심판 판정에 폭력 항의를 하는 바람에 구속을 당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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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구단은 김 전 감독에 ‘일시 퇴진’ 징계를 내렸고, 이듬해 팀에 복귀했다. 하지만 삼미는 두 시즌 연속 최하위(6위)에 그쳤고, 85년 한국프로야구 최다인 18연패 수모도 겪었다.

그해 전리기그 뒤 삼미는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청보에 팔려 ‘청보 핀토스’로 이름을 바꿨고, 이듬해 그는 감독에서 해임됐다. 1989년 그는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지만 역시 성적 부진으로 몇개월 만에 경질됐다. 고인의 프로야구 감독 성적은 121승 8무 186패다. 그는 199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지금껏 살아왔다.

고인의 아들도 야구인으로 ‘미스터 인천’ 김경기 <스포티브이>(SPOTV) 해설위원이다. 김풍기 한국프로야구(KBO) 심판위원은 고인의 조카다.

빈소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6시 예정이다. (032)571-1326.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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