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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외교관' 불러들인 외교부, 뉴질랜드 압박엔 "불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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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면담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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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뉴질랜드 근무 당시 현지인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외교관을 현재 근무지인 필리핀에서 불러들인다. 사실상의 문책성 조치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당 문제 해결을 요구한 지 엿새 만이다.

성추행 여부에 대한 피해자와 외교관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지만, 뉴질랜드의 거센 압박에 외교부가 물러선 것이다. 이에 외교부는 '뉴질랜드가 사건을 지나치게 키운다'는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양국 외교 갈등이 더 날카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 '뉴질랜드, 왜 언론 앞세우나' 불만


외교부는 3일 뉴질랜드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외교관 A씨를 즉각 귀국하도록 지시했다. A씨는 필리핀 총영사로 근무 중으로, 한국에 돌아온 뒤 무보직으로 대기하게 된다. 징계 조치라는 뜻이다.

A씨는 2017년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할 당시 동성인 남성 직원의 엉덩이를 손으로 잡는 등 3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던 총리와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 등이 한국 정부에 A씨 성추행 사건 해결을 요구하면서 외교 문제로 번졌다.

외교부는 A씨 인사 조치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뉴질랜드 정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려면 양국 간 공식 사법협력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뉴질랜드가 사법 공조나 범죄인 인도 등 요청은 정식으로 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뉴질랜드가 언론 플레이를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게 외교부 시각이라는 얘기다.

외교부는 뉴질랜드에 항의의 뜻도 전달했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3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를 불러 '뉴질랜드가 요청하면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협조할 수 있다. 언론을 통한 문제 제기만 하지 말고, 공식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던 총리가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문제를 언급한 것은 '외교 관례상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외교적 언어로 순화하긴 했지만, '뉴질랜드 정부의 태도가 선을 넘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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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달 8일 기자회견장에서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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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성 비위 무관용'이라면서 반성은 "NO"


외교부가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뉴질랜드가 양국 간 사법협력 절차를 우회하는 것의 '의도'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7년 12월 피해자 제보를 접수한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A씨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인사 조치를 하고, 인사위원회를 통해 A씨에 경고를 내렸다. 2018년 10월 피해자가 추가 문제제기를 하자, 현지 감사를 통해 A씨는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와 뉴질랜드 고용부에 진정서를 넣는 방안도 안내했다. A씨와 피해자 사이에 정신적ㆍ경제적 피해를 보상하는 중재 노력도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 비위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외교부가 뉴질랜드에 거꾸로 화살을 돌리는 것은 더 큰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사실 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외교부의 태도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강한 의심이 깔려 있다. 자칫 '한국 정부는 외교관 성 비위를 감싸는 정부'라는 국제적 망신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사건 초기 외교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쉬쉬하는 분위기가 문제를 키웠는데도,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반성은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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