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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뉴질랜드 공관 성추행’…적극 대응으로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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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주한 뉴질랜드 대사 불러 ‘사법절차 따른 해결’ 제안

[경향신문]



경향신문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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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직접 조사’ 주장
외교부, 부당한 요구로 판단
해당 외교관 즉시 귀국 지시

한국 외교관이 뉴질랜드 공관 근무 당시 현지인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두고 그동안 뉴질랜드 정부의 강한 압박에 침묵하던 외교부가 3일 주한 뉴질랜드 대사를 불러 ‘사법절차에 따른 해결’을 제안했다. 또 제3국에 근무하는 해당 외교관 A씨에게 귀임 발령을 내렸다.

외교부가 적극적 태도로 선회한 것은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려워진 데다 뉴질랜드 정부가 외교적·법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나 “뉴질랜드 측이 제기하는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식은 공식적인 사법 절차에 의한 것”이라며 “뉴질랜드 측이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형사 사법 공조와 범죄인인도 등 절차에 따라 우리는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지난 1일 “성추행 혐의를 받는 한국 외교관은 뉴질랜드에 들어와 조사를 받으라”며 “한국 정부는 그가 외교면책 특권을 포기하게 하고 뉴질랜드로 보내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에 대한 대응이다. 현재 뉴질랜드 사법당국은 A씨에 대해 ‘입국 시 체포’를 위한 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여서 A씨가 스스로 입국해 조사받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가 조사를 강제할 수는 없다. 또한 뉴질랜드 정부가 범죄인인도요청 등 법적 근거를 갖추지 않고 한국 정부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압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다.

고위 당국자는 또 피터스 부총리가 ‘A씨에 대한 면책특권 포기’를 요구한 것을 두고 “A씨 개인에 대한 특권면제와 뉴질랜드의 한국 대사관 공사관원에 대한 특권면제는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뉴질랜드 밖에 머물고 있어 면책특권이 성립되지 않으며, 뉴질랜드 경찰이 한국 공관의 폐쇄회로(CC)TV 등 기록물을 열람하고 관계자를 소환조사하겠다는 요구에 대해서는 특권면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공관 기록물 열람이나 외교관 소환 조사 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면서 “자료제출과 서면조사로 대신하자는 한국의 제안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날 오후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를 불러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법적·외교적 해결 노력을 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 만남에 대해 “항의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사실상 주한 뉴질랜드 대사 초치라고 볼 수 있다.

외교부는 A씨에 대한 귀임 명령에 대해서는 “여러 물의를 야기한 데 대한 인사 조치”라고 밝혔다.

A씨의 성추행 의혹은 최근 뉴질랜드 현지 언론 보도에 이어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통화에서까지 거론되면서 파문이 커졌다. 현재 아시아 주요 공관 총영사로 재직 중인 A씨는 2017년 말 뉴질랜드 근무 당시 현지 직원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세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문제제기 이후 주뉴질랜드 대사관이 인사위원회를 열어 A씨에게 경고장을 발부했고, 2018년 10월 외교부 현지 감사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불거지면서 본부 차원에서 감봉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고위 당국자는 징계 수위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외부 법률 전문가들까지 참여해 다각적으로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뒤늦게 A씨를 귀임조치한 것을 두고 초기에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했다가 일이 확대되자 추가 조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주뉴질랜드 대사관 측은 피해자와 올해 초 4개월간 중재 협의를 벌였으나 피해자의 위자료 요구 등에 대한 입장차가 커서 결렬됐다고 고위 당국자는 전했다. 피해자는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다시 엄정하고 정확하게 조사해 법 적용을 해야 한다”면서도 “뉴질랜드 정부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도 분명한 지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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