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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슬픔’에 둔하다고 했지만…표출하지 못했던 이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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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좋아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해롭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일화를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한다.

기원전 522년,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였다. 그는 이집트 왕 프삼메니투스를 치욕스럽게 만들 작정으로 가족과 친지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그런데 이집트 왕은 딸이 노예가 되어 물을 길러 가고 아들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더니, 자신의 신하가 거지가 되어 병사들에게 동냥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거지로 전락한 신하의 불행은 울음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자식들의 불행은 울음으로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잃고 돌이 되어버린 신화 속의 니오베처럼, 이집트 왕은 자식들의 비참한 운명 앞에서 돌처럼 무감각했다. 몽테뉴가 해롭다고 한 슬픔은 영혼을 마비시키는 그러한 극단적인 감정 상태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에게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딸을 여섯 낳았는데 다섯을 잃었다. 한 명은 태어나서 며칠 후에, 나머지 넷은 한 달에서 세 달 사이에 죽었다. 자기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던 친구인 라 보에시도 잃었다. 그가 시장으로 있던 보르도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해 인구의 10분의 1이 죽었다. 그러나 그는 이성의 힘으로 그러한 시련들에 맞서고자 했다.

몽테뉴는 스스로를 ‘태생적으로 슬픔에 대한 감수성이 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둔한 감수성마저도 이성의 힘으로 더 둔하게 만들려고 했다. 격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방어적 자세였다. 그는 정말로 슬픔에 둔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슬픔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차가운 이성으로 얼려버렸을 따름이다. 슬픔을 향한 금욕주의라고나 할까. ‘슬픔에 대하여’라는 그의 글이 냉철한 겉모습과 다르게 애잔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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