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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피해자 호소 직시가 약자 위해 살았던 ‘박원순 추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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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고소인 2차가해 확산과

연대 정치인·단체 향한 공격에

“박 시장도 평생 약자 위해 살아

흑백논리 넘어 성찰하자” 목소리


한겨레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을 하루 앞둔 12일 오전 서울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방명록과 코로나19 대비용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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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형식을 놓고 찬반양론의 간극이 크다. 그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계를 중심으로 서울특별시 기관장 형식의 장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맞서 피해 호소인(고소인)을 향해 정치적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추모가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인권변호사이자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의 ‘박원순’을 제대로 추모하기 위해서는 고소인의 ‘성추행 피해 호소’를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0일 박 시장의 부음이 전해진 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 시장의 죽음을 고소인 탓으로 돌리거나 그의 신상정보를 파헤치는 지지자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피해 호소인이 고소장을 접수한 것을 두고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퍼졌다. 연대 의사를 밝힌 여성단체와 정치인을 향해서도 “도의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무분별한 2차 가해의 틈을 비집고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 피해자를 향한 연대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학자이자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흑백논리를 넘어서서, 한 인간이 지닌 복합적인 면들을 ‘한꺼번에’ 보아야 한다”며 “그(박 시장)와 ‘함께’ 그리고 그를 ‘넘어서’ 보다 인간의 권리가 확장되는 서울, 한국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제를 우리 각자의 어깨 위에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의당 여성본부도 이러한 2차 가해 움직임을 두고 “생전에 성평등을 위해 서울시 젠더특보, 젠더자문관을 둘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고인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부끄러워할 것 같습니다”라고 입장을 냈다. 성평등을 지지한 인권변호사였던 박원순의 뜻과 어긋난다는 취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단체 활동가도 “박 시장의 의혹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건 박 시장이 공공연히 지향해온 성평등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부천서 성고문 사건’(1986년) 등의 변론을 맡으며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앞장섰다. 1999년엔 ‘서울대 신 교수 사건’으로 성희롱의 법적 개념을 정립한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공판 당시 그는 대인기피 증세 등 성희롱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우려했으며, 판결 뒤에도 원래 ‘우 조교 사건’으로 유명했던 사건명을 “피해자 대신 가해자 ‘신 교수’의 이름으로 사건이 불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2002년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의 성추행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땐 “성추행 유무가 우선 중요하며, 이 사건을 또 다른 정치세력이 이용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며 무분별한 배후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 호소인의 곁에 서겠다는 정치인이나 여성단체들을 향한 공격은 이처럼 ‘박원순’이 일궈온 가치를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앞서 정의당의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이 피해 호소인에게 연대를 표하고 박 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일각에선 “조문을 정쟁화하지 말라”는 반발이 쏟아진 바 있다.

여성단체만이 아니라 박 시장과 가까웠던 이들도 그를 진정 추모한다면 피해 호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박 시장 장례위원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날 브리핑을 열어 “고인을 추모하는 그 어느 누구도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거나 압박하여 가해하는 일이 없길 거듭 호소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마을만들기’ 사업 등을 함께 한 유창복 미래자치분권연구소장은 “고발인(고소인) 주장의 진위를 떠나, 지금 고발인이 느끼고 있을 두려움과 당혹감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배려했으면 좋겠다. 평생을 오로지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살아오신 고인의 뜻을 헤아린다면, 더 그렇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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