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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흙수저 맞벌이 외면, 금수저 외벌이 혜택”…특별공급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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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청약 제도와 관련된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기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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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 차 신혼부부인 곽 모(37) 씨는 맞벌이 부부다. 무주택자인 곽 씨가 집을 사면 생애최초 구입에 해당하지만, 특별공급 혜택은 받지 못한다. 소득 조건이 맞지 않아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내 신 모(37) 씨는 12년 차, 곽 씨는 10년 차 직장인으로, 부부의 연봉을 합치면 9200만원 수준이다. 월 수령액은 766만원으로, 특별공급 소득 기준인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40%를 넘는다.

곽 씨는 7‧10대책이 달갑지 않다. 청약가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일반공급을 노려야 하는 곽 씨는 특별공급이 늘면서 되레 새 아파트 장만이 불리해졌다고 본다. 일반분양 물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곽 씨는 “부모님께 지원을 받지 못해서 결혼도 늦었는데, 내 집을 마련할 길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모(34) 씨도 결혼 2년 차 신혼부부다. 무주택자인 한 씨는 외벌이다. 한 씨의 아내는 임신하면서 회사를 그만뒀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4년 차 직장인인 한 씨의 연 소득은 7500만원이다. 7‧10대책으로 신혼부부나 생애최초주택 구입자 특별공급 대상이 됐다.

한 씨는 결혼할 때 부모님이 장만해주신 6억 원짜리 전셋집에 산다. 청약에 큰 관심이 없었던 한 씨는 앞으로 적극적으로 청약에 나설 계획이다. 당첨 확률이 높아져서다. 예컨대 지난달 말 청약을 받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 74㎡ A타입 일반분양 경쟁률은 164대 1이었다. 하지만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은 99대 1이다. 한 씨는 “전세 보증금도 있고 대출도 받을 수 있어서 당첨만 되면 큰 무리 없이 새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산 없는 맞벌이 무주택자 불리"



정부가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지원을 위해 생애최초 특별공급 적용 대상을 확대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30대 젊은 층을 정조준한 방안이지만, 되레 젊은 층도 반발하고 있다. ‘흙수저 맞벌이는 외면하고 금수저 외벌이를 위한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논란의 중심은 특별공급 대상 조건이다. 우선 소득요건이다. 분양가가 6억~9억원 미만인 민영주택의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최대 130%(맞벌이 140%)까지 소득 기준을 완화했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는 숫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벌이와 맞벌이 간 소득 기준 차이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501만원, 중소기업은 231만원이다. 임채우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연구위원은 “부부가 웬만한 중견기업에 3년씩만 다녔어도 부합하지 않는 기준”이라며 “고소득 외벌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소득만 따져서 대상을 한정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자산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비싼 전셋집을 마련해 준 외벌이 ‘금수저’와 싼 월셋집에 사는 맞벌이인 ‘흙수저’ 신혼부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금조달계획서를 쓸 때 지금 사는 전셋집의 보증금은 소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걸림돌 없이 특별공급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역차별 논란도 있다. 특별공급이 늘어나면서 일반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민영주택은 일반공급이 전체물량의 57%에서 42%까지 줄었고, 국민주택은 20%에서 15%로 줄었다. 예컨대 공공택지인 과천지식정보타운의 민영아파트에 1만 명이 청약한다면, 일반분양물량이 570가구에서 420가구로 줄어든다. 경쟁률은 17대 1에서 23대 1로 높아진다.



"4050 청약 기회 줄었다" 세대 갈등도



세대 간 청약 갈등까지 빚어질 판이다. 2030 세대보다 부양가족이 많고 무주택기간도 긴 40대나 50대의 청약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점제 중심 청약에선 부양가족 수, 무주택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길수록 점수가 높기 때문에 40~50대의 당첨 확률이 높았다.

애초 20~30대의 새 아파트 장만을 어렵게 만든 것은 정부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2017년 8‧2대책으로 청약가점제 비중을 확 높였다. 당시 서울(투기과열지구) 기준으로 전용 85㎡ 이하 중소형은 가점제 75%, 추첨제 25%를 적용했는데 이 기준을 100% 가점제로 바꿨다. 공급을 확 늘리지 못한 상태에서 불만을 달래는 식으로 기준만 바뀌다 보니, 이래도 저래도 불만이 쌓이는 악순환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10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자산 기준을 도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검토해보도록 하겠지만, 현재까지 검토한 건 없다"고 말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로 새 아파트가 '로또'가 된 상황에서 특별공급 물량이 늘어난 만큼 소득요건도 지역별로 현실화하거나 자산 기준을 넣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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