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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사설] 영정 앞에서 내편, 네편 다투는 미성숙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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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조문(弔問) 전쟁’에 휩싸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장군이 지난주 잇따라 작고한 직후 장례 방식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 각계각층의 날선 공방이 한창이다. 박 시장은 성희롱 혐의자에 대한 공적 조문과 ‘서울특별시장(葬)’의 타당성 여부가 쟁점이고, 백 장군은 대전현충원으로 결정된 장지가 고인에 대한 예우에 합당한지가 논란거리다.

박 시장은 전 여비서에 의해 성희롱 의혹으로 고소당한 다음날인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특별시장 자체가 ‘2차 가해’이며, 순직이 아닌 장례에 공금을 집행해선 안 된다는 지적엔 일리가 없지 않다. 이유 불문하고 사상 첫 서울특별시장 해당자가 성추행 혐의와 관련돼 있어 모양새가 빠진 건 사실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정의당 일부 의원이 조문 불참을 선언했고 미래통합당도 단체조문 계획을 접었다. 이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가 사흘 만에 54만명을 넘은 데서도 반발 정도를 짐작하게 된다.

반면 여권은 조문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대규모 장례위원회도 구성됐다. 고인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쌓은 업적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박 시장을 고소한 전 여비서에 대한 ‘신상털기’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향년 100세로 작고한 백 장군에 대해서는 집권당이 논평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이념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장지가 서울이 아닌 대전현충원으로 격하된 것도 최근 제기된 ‘친일파 파묘’ 논란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일제시대 만주군 복무 경력을 근거로 절체절명의 나라를 구한 6·25 전쟁영웅이자 국제사회에서도 존경받는 고인의 공적을 폄훼하는 건 옳지 않다.

이처럼 조문이 논란거리가 되는 건 우리 사회가 덜떨어졌기 때문이다. 자기들만의 판단을 내세워 무조건 감싸거나 공격하기 일쑤다. 물론 특정인의 생애를 놓고 옳고 그르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평가를 넘어 개인적인 인연을 강조해야 할 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공적 영역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상식과 국민적 공감대를 감안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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