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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억할 오늘] 굴욕을 딛고 선 기적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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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ence C. Jones( 7.13)
한국일보

1912년 무렵의 로렌스 존스(맨 왼쪽)와 흑백의 후원자들. 뒤편 건물이 초창기 '파이니우즈 학교'다. State Historical Society of Io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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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시피 주는 수정헌법 13조(노예제 폐지, 1865)를 130년 뒤인 1995년 비준했다. 그마저 행정 착오로 제때 연방 정부에 통보를 안해 공식적으로는 2013년에야 노예제를 폐지한 주가 됐다. '짐 크로 법'의 흑인 분리 차별이 가장 끈덕지게 유지된 곳이면서 2010년 기준 아프리칸 아메리칸 비율(37%)이 미국서 가장 높은 주다.

아이오와대를 졸업한 흑인 청년 로렌스 존스(Laurence C. Jones, 1882.11.21~ 1975.7.13)가 랭킨 카운티 파이니우즈(Piney Woods) 숲에 터 잡고 그루터기를 책상 삼아 막 글을 가르치던 1909년의 미시시피는 남북전쟁의 앙금으로 뿌연 곳이었다. 가진 거라곤 책 몇 권과 현금 1달러 65센트가 다였던 그는 문맹률 80%의 흑인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자신이 운 좋게 받은 교육의 보답이라 여겼다.

그의 열정에 한 해방 노예가 빈 땅과 헛간을 기부했다. 존스는 거기에 ‘파이니우즈 스쿨’을 세웠다. 1912년 결혼한 아내(Grace M. Allen)와 함께 아이들에게 글과 기술을 가르쳤다. 드물게 박식하면서도 한없이 유순하고 예의바른 그를 백인들도 도왔다. 제재소 사장은 교사 증축용 목재를 댔고, 누구는 젖소를, 또 돈을 기부했다.

1917년 교회 강연서 '흑인이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가 백인 무리에게 린치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존스는 자신의 취지를 설명하고 백인 후원자들의 면면을 밝히며 애원했다.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주동자급인 남자가 “나도 그들(백인들)을 잘 안다.(…) 우리가 실수한 모양이다. 우리도 돕자”며 모자를 벗어 즉석 모금을 했다고 썼다.

그는 수많은 제자와, 교사 42명에 재학생 250명을 둔 버젓한 학교와, 모금한 기금 700여 만 달러를 남겼다. 그리고, "누구도 내게 증오심을 품게 할 만큼 굴욕을 주진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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