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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했다”… 故 최숙현 사건에 다시 드러난 체육계 가혹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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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한 최숙현 선수. 연합뉴스


“고(故) 최숙현 선수가 얼마나 참담했을지 잘 알 것 같다. 저희 아이도 당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긴급토론회에 참석한 최모씨는 자신의 피겨 선수 자녀가 코치로부터 당한 폭언, 폭행 사실을 고백하며 이같이 밝혔다. 최씨는 “(코치의 폭행을)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벌금 20~30만원에 그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힘없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2차 피해까지 발생하는 걸 보고 경찰, 관계 기관 등 진정서를 넣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최 선수의 사망 이후 인천시체육회 여자핸드볼팀 선수들도 체육회 간부가 술자리에서 강제로 술을 따르게 하고 춤을 추게 시키는 등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체육회는 감사 부서인 스포츠공정실을 통해 해당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동안 침묵했던 최 선수의 동료들도 뒤늦게 팀 내 폭행, 폭언에 대한 증언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으며,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당연시돼 있었다”며 추가 폭행, 성폭력 의혹 등을 제기했다.

10일 체육계에 따르면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유도 신유용 선수 등 폭행과 성폭행 사건이 이어졌지만 그동안 폭력적인 관행과 부조리는 ‘전혀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감독과 코치, 선배들과 함께 장기간 운동을 이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폭력과 성폭력 등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다는 것이다. 최 선수의 경우 이 같은 고통을 주변에 수차례 호소했지만 결국 대안을 제시해줄 곳을 찾지 못했다.

선수들의 폭행 피해는 통상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인 학창시절부터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초·중·고 학생선수 6만3211명(5만7557명 응답)을 대상으로 ‘인권실태 전수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14.7%(8440명)이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학생 선수 비중을 보면 고등학생이 16%(2832명)로 많았고 초등학생 12.9%(2320명), 중학생 5%(3288명)로 뒤를 이었다. 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도 2212명으로 3.8%에 달했다. 최근까지 체육계 폭력과 성폭행이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한 고등학생은 “사안이 커지면 운동부 자체가 없어진다고 했다”며 “내선에서 끝내려 했지만 잘 안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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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네이버 지식인에 고 최숙현 선수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 네이버 지식iN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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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의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일지. 연합뉴스


이들이 고통을 토로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고 최숙현 선수의 경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인권센터 등 체육계 뿐 아니라 경찰, 국가인권위원회 등에도 가혹행위에 대한 도움을 청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지난해 3월 최 선수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네이버 지식인’ 글이 발견되기도 했다. 글쓴이는 “선배들은 사실이 아닌 걸로 사람을 욕한다. 제가 있어도 제육이 아닌 것처럼 욕을 하고 운동하는 중에도 자기들끼리 제 욕을 한다”며 “방법을 주세요 제발...”이라고 절박한 심경을 드러냈다. 고통을 토로할 곳 없는 최 선수의 답답한 심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고 최숙현 선수 사건에 대해 “선수에 대한 가혹 행위와 폭행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산”이라며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합당한 처벌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와 함께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과 “유사사례 조사”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뒤늦은 대응에 나섰다. 경찰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체육계 불법행위에 대해 집중 대응하기로 했다. 경찰은 9일부터 한 달간 체육계 폭행, 갈취 등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 신고기간’을 운영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스포츠계 폭력 등 인권문제를 전담 조사하는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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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 뉴스1


국회에서도 제2의 최숙현을 막는 일명 ‘최숙현법’ 논의에 들어갔다.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상 체육계 성폭력 및 폭력 문제 전담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에 관한 규정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돼 올해 8월부터 정신 운영될 예정이지만, 피해자 보호와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대표 발의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최숙현법)에 스포츠윤리센터의 권한과 의무를 확대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조항을 넣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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