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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박원순 고소 여성 반드시 색출,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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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 여당 지지자들 2차가해… 서울시 자료 뒤져 신상털기

"서울시청에 공개돼 있는 열람 가능한 자료를 뒤져보니… 곧 찾겠네요!!! 같은 여자로서 제가 그분에게 참교육시켜줄 겁니다."

10일 오전 9시쯤 온라인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여기서 '그분'이란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박 시장 전(前) 비서 A씨다. 글은 '성추행 피해자를 색출해 보복하겠다'는 취지의 반(反)사회적 내용이었지만, 게시판에 올라온 지 두어 시간 만에 400개 가까운 추천을 받았다. 댓글도 100건 넘게 달렸다. 대부분 "그 인간 세상 무서운 줄 알게 해줘야" "그렇게 당당하면 이름 까고 미투하든지 ××" "악은 응징해야 합니다" 등 글쓴이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이었다. 딴지일보는 친여(親與) 방송인 김어준이 만든 사이트다.

이 글은 언론에 알려져 논란이 일자 이날 오후 지워졌다. 하지만 이날 인터넷에서는 비슷한 방식의 '2차 가해'를 위한 피해 여성 신상털기와 피해 여성을 편드는 이들을 상대로 한 댓글 테러가 잇달아 벌어졌다. 주체는 주로 극성 여당 지지자들이었다.

정의당 류호정 국회의원은 피해 여성을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댓글 공격을 받았다. "사이코패스냐" 등 비난 댓글이 달렸다. '고인이 된 박 시장을 애도하는 게 먼저'라는 취지의 공격이었다.

이날 경찰은 피해 여성 A씨에 대한 인터넷상 악성 댓글에 대해 증거를 확보하는 등 수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의 요청과 동의가 있다면 신변 보호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박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른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도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박 시장을 시민 세금을 들여 장례를 치러주는 것 자체가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비서 출신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다음 날 집을 나선 뒤 북악산 기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건 간 상관 관계는 박 시장 유서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친여(親與) 네티즌들은 성추행 피해 여성을 상대로 한 원색적인 비난과 신상털기를 시작했다.

방송인 김어준이 만든 딴지일보 사이트에는 이날 피해 여성을 특정해 공격하는 글이 쏟아졌다. 이날 오전 7시쯤 올라온 "저는 여자입니다"라는 글에는 "×××아 네가 떳떳하면 공개적으로 말하라고. 바퀴벌레같이 숨어서 약한 척 피해자인 척하지 말라고"라고 적혔다. 그러자 누군가 "속 시원한 포효"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날 오후엔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피해 여성을 지레짐작해 특정한 사진 등 각종 '지라시'가 숱하게 공유됐다.

이러한 2차 가해에 맞서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온라인에는 "박원순 시장은 정말 무책임하다. 시시비비를 가릴 게 있으면 가리면 되지. 자살로 고소인을 허망하게 만들었다" "성추행 사건 피해자 편에 선 변호사라는 전적이 있는 사람이 (자살이라니), 위로는 피해자가 받아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해시태그가 유행하기도 했다. 아예 '고인(故人·박 시장)의 명복을 빌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10일 오전 박원순 시장에 대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도 "서울시는 피해자인 비서를 보호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그에게 지원과 보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몇억이 들지 모르는 5일 서울특별시 장례를 치르고, 시청 앞에 분향소를 만들어 시민 조문을 받는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썼다. 이어 "내 세금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에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페이스북 발언을 인용해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뿐,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가게 될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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