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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국내 첫 성희롱 변호·시민운동가로 명성…대권 꿈서 멈춘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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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제명 후 서울대 성희롱 사건 등 인권변호사 활동

아름다운재단·3선 최장수 서울시장…극단선택으로 빛바래

뉴스1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인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 앞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7.1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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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실종됐다 결국 숨진 채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3차례나 연달아 서울시장에 당선된 여권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이다.

'국정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서울특별시정을 10년간 경험하고 지난 4월 총선에서 일명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 10여명이 대거 국회로 입성하면서 당 안팎에서 대권 주자로서 힘을 받았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도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기본소득과 부동산 정책 등 이슈를 주도하며 대선으로 가는 길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러나 9일 오전 연락을 끊은채 실종됐다가 10일 오전 0시1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숙정문과 삼청각 중간 지점의 숲속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본인과 측근들의 대권 꿈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됐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부유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제적을 당했다.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수학한 박 시장은 한국에 돌아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결국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 만에 사표를 낸다.

이후로는 상당기간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민주화 운동에도 한복판에 섰다. 1980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주로 맡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직장내 성희롱 풍토의 시선을 바꾼 유명한 일화다.

박 시장은 1995년부터 보폭을 넓혀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으로 활약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부정부패 혐의로 얼룩진 정치인들을 낙선시키자며 운동을 전개했고 대상자 86명을 명단으로 발표, 총선을 앞둔 정치권을 뒤흔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국민생활최저선운동, 사법개혁운동, 작은권리찾기운동, 소액주주운동, 예산감시 정보공개운동 등 그가 이끈 여러 사회참여운 동으로 우리사회의 시민운동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게 시민사회의 중론이다.

시민운동을 우리사회에 정착시킨 그는 기부와 모금 쪽으로 관심 분야를 넓힌다. 2000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도 연다. 기부받은 물건을 재가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팔고 그 수익을 기부하는 게 아름다운 가게의 주 목적이다.

박 시장은 '소셜 디자이너'로도 활약하며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로도 일했다. 희망제작소는 공공기관에 시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일종의 싱크탱크로 우리나라 최초로 거버넌스(민관협치)를 현실화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 그는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된 서울시 사령탑의 후보로 급부상했다. 이후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단일화에 성공한 뒤 야권의 단일후보로 당선에 성공한다.

이후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원전하나줄이기, 노동이사제, 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수많은 사회혁신정책을 단행했다.

더 큰 꿈을 키워가던 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중도포기하는 시련도 겪었다. 그러나 서울시 최초 3선 시장 고지에 오르면서 여전히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넓혀왔다.

성희롱은 범죄라는 것을 세상에 알린 인권변호사로 시작, 시민운동가를 거쳐 서울시장까지 올라 대권을 꿈꿨지만 극단적 선택으로 멈춰서게 됐다.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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