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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홍콩 자유' 언급 건너 뛴 교황…중국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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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된 강론문엔 '종교 자유' 언급 담겨

"우회적 방식으로 우려 전한 것" 해석도

중앙일보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이날 교황은 미리 배포된 강론문과는 달리 홍콩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바티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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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한 우려가 담긴 연설문을 받아들고도 막상 강론에선 홍콩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일 주일 삼종기도 강론에서 당초 홍콩 보안법 시행으로 종교 자유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표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CMP에 따르면 강론 1시간 전 바티칸 공인 기자들에게 미리 배포된 강론문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강론에선 이를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사전 배포된 강론문에는 “홍콩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진심 어린 우려를 표한다. 최근 상황들은 홍콩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어 “국제법과 규정에 따라 (홍콩인들의) 사회적 삶 특히 신앙 활동의 자유는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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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텅빈 성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한 이후 민감한 이슈와 국제 정세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해왔다. 특히 난민 문제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미국에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어떤 종류의 인종차별도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한반도 평화에 대해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며 격려한 바 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처벌 대상을 크게 4가지로 명시하고 있다. 국가 분열 행위, 국가·정권 전복 행위, 테러 행위, 해외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전을 해치는 행위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 중 해외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전을 해치는 행위가 홍콩 종교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홍콩 교구의 통혼 추기경은 지난달 교회와 바티칸이 홍콩 보안법상 ‘해외와 결탁한 세력’으로 분류돼서는 안 된다며 홍콩 사회의 종교적 자유가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천르쥔 전 추기경은 "홍콩에서 신앙의 자유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든 홍콩 보안법에 의해 체포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선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은 1951년 바티칸과의 관계를 단절해왔다. 그러다 2018년 9월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 7명을 바티칸 교황청이 공인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합의안에 서명하며 관계 개선에 나선 상태다. 보안법에 대한 언급이 자칫 이런 상황을 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했을 것이란 얘기다.

중국 정치학을 연구하는 로런스 리어든 뉴햄프셔대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교황의 발언은 2018년 중국과의 합의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홍콩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말했다. 교황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자들에게 나눠준 강론문을 통해 홍콩 정부에 대한 우려를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홍콩 시위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6월부터 홍콩 시위가 시작됐지만, 바티칸은 5개월이 넘게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당시 홍콩 가톨릭 교구 내부에선 이를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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