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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미식 1번지’ 남도, 그곳은 지리적 표시 식재료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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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일교차’가 만든 뛰어난 향 보성 녹차

전국의 겨울 배추시장 80% 점유 해남 배추

일조량 많고 따뜻한 날씨가 만든 광양 매실

풍부한 황토 토양서 해풍 머금은 고흥 마늘

전라도엔 지리적 표시 인증 식재료가 49개

헤럴드경제

고흥 마늘광양매실보성녹차


대한민국 ‘미식 1번지’로 손꼽히는 남도에는 특별한 식재료가 많다. 축복받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덕분이다. 특히 각 지역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이어져 내려온 식재료가 남도를 ‘맛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전라도 전역으로 넓혀 보면 49개(전라남도 34개, 전라북도 15개)의 식재료와 식품이 까다로운 인증을 받았다. 바로 ‘지리적 표시’ 제도다.

지리적 표시는 1994년 국내에 도입됐다. 특정 식재료나 식품의 유명성과 품질이 특정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해당 농산물과 가공품이 그 지역에서 생산, 가공됐음을 나타낸다.

지리적 표시 보호를 받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 지리적 표시 대상 지역에서만 생산, 가공할 것 ▷ 품목의 우수성이 국내외에 알려져 있을 것 ▷ 지리적 표시 대상 지역에서 생산된 역사가 깊을 것 ▷ 해당 품목의 특성이 해당 지역의 생산 환경적 요인이나 인적 요인에 기인할 것. 이렇게 까다로운 기준에 통과한 식재료는 대한민국 1등 특산물이라 해도 무방하다.

남도 지역에 지리적 표시 식재료가 유독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정훈 서울대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는 “지리적 표시는 해당 지역의 기후에 영향을 받은 특정한 식재료에서 많이 나온다”며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많은 인증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라남도는 지리산 끝자락에서 내려와 넓은 바다와 갯벌, 평야, 낮은 구릉, 골짜기 높은 산 등 굉장히 다이내믹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다양하고 독특한 식재료의 천국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농산물 지리적 표시 1호도 남도에서 나왔다. 2002년 1월 보성녹차연합회 영농조합법인에서 등록한 ‘보성 녹차’다.

보성에선 예부터 차나무가 자생해 녹차를 만들었다. 전라남도 보성군은 전국 차 재배면적의 약 37%를 차지하고 있다. 보성군은 특히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졌으며,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지점이다. 덕분에 일교차가 극심해 차의 아미노산 형성에 영향을 준다. 최고급 차 재배로는 최적의 위치인 셈이다. 1960년대에는 현재의 330ha보다 훨씬 넓은 600ha의 차밭이 조성되기도 했다. 국내 차 산업이 부진해진 이후로 보성 녹차는 아이스크림으로 재탄생,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상품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김치. 김치를 만드는 가장 필수적인 식재료인 배추 중 유일하게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은 것은 남도 출신이다. 바로 해남 겨울배추다. 2005년 해남겨울배추협의회 영농조합법인에서 등록했다. 지리적 표시 11호 제품이다.

해남겨울배추는 겨울 배추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해남은 특히 기온분포가 배추 생육에 적합하다. 결구기에도 10°C 정도를 유지하여 추대가 되지 않으므로 고품질의 배추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 해남은 동해에 안전한 -3°C 이상의 겨울철 온도 조건을 갖고 있다. 해남겨울배추가 특별한 것은 병해충이 없는 가을에 재배돼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조직이 치밀하고 결구가 완벽해 봄배추로 담근 김치에 비해 시간이 지나도 물러지지 않는다.

남도에서 주목해야 할 지리적 표시 식재료 중 광양 매실과 고흥 마늘을 빼놓을 수 없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광양 하면 매실, 매실 하면 ‘명인’ 홍쌍리 여사다. 광양 청매실 농원의 주인인 홍 명인은 40여년 전 산비탈 황무지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그것이 마을 전체를 뒤덮으며 매화마을이 형성됐고, 해마다 매화축제엔 100만명이 다녀간다. 광양매실은 현재 농산물 지리적 표시 36호로 등록돼있다.

광양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후조건이 따뜻해 매실 생육에 좋은 지형을 갖췄다. 광양 지역의 매화나무 개화기는 보통 3~4월로 평균 기온이 11.3℃다. 다른 지역의 매실 산지보다 무려 1~4℃ 이상 높고 일교차가 적어 늦서리의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 만큼 수확량이 많다. 문 교수는 “따뜻한 지역인 해남에서도 매실이 많이 나고 있다. 그런데 해남보다 북부에 있는 광양은 겨울철과 초봄이 더 따뜻해 매실의 개화시기가 약 2주 정도 빠르다”며 “개화 후 90일이 되면 파란 청매를 출하할 수 있고, 110~120일이 되면 제대로 농익은 황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양에선 보통 6월 중순부터 황매 수롹에 들어가 7월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수확을 마무리한다. 문 교수는 “수확이 7월 초순으로 들어가면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고흥 마늘은 의성, 담양, 삼척, 창녕, 남해 마늘과 함께 지리적 표시로 등록된 마늘이다. 농산물 지리적 표시 등록 99호다. 마늘이라고 다 같은 마늘이 아니다. 토양과 기후가 다르니 마늘의 품종이 달라지고 맛도 천차만별이다. 고흥의 경우 날씨가 따뜻해 ‘난지형 마늘’을 쓴다. 소위 ‘육쪽 마늘’로 불리는 종이다.

문 교수는 “고흥에는 마늘 밭이 대부분 해안가에 있다”며 “아침마다 해무가 어마어마해 마늘이 강한 햇살을 받지 않고, 해풍을 많이 맞고 자란다”고 말했다. 특히 황토가 풍부한 토양에서 자라 “독특한 미네랄이 마늘의 성장과 맛에 영향을 줘 지역적 특색을 만들었다”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이러한 특성으로 고흥 마늘은 육질이 단단한 데다 톡 쏘는 맛이 적고, 단맛이 난다. 장아찌를 담글 때는 고흥 마늘이 최고라는 이야기는 이 때문에 나왔다.

깐깐한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되면 하나의 식재료나 식품으로 고부가가치를 내게 돼 지역 경제를 일으키는 히트 상품이 되기도 한다. 광양매실이나 영광모싯잎송편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지리적 표시제의 의의는 먹거리 생산과 소비의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데에 있다.

문 교수는 “지속가능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라며 “각 지역의 독특한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품종의 식재료를 가지면 기후변화나 병해충 등 질병이 왔을 때도 품종이 멸종하지 않고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리적 표시는 생태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해 태어난 제도로 이를 통해 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돼 먹거리의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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