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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픔과 책임 사이… 박경완이 염경엽을 기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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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염경엽(52) SK 감독은 2019년 팀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코칭스태프 기조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재임하던 당시의 코칭스태프를 상당 부분 그대로 끌고 갔다. 관심을 모았던 수석코치 보직은 생각보다 쉽게 결정했다. 별 망설임 없이 박경완(48) 배터리 코치를 승격시켰다.

박 감독대행은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 포수이자, SK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스타 출신이다. SK도 ‘차기 감독 후보군’에 박 감독대행을 넣고 체계적으로 육성을 해왔다. 은퇴하자마자 퓨처스팀(2군) 감독을 맡기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은 그 증거다. 2015년에는 당시 조직도에 없었던 육성 총괄 명함까지 팠다. 프런트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서였다. 2016년부터는 1군 배터리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이동에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대개 수석코치는 감독의 복심이자 향후 감독으로 가는 코스 중 하나로도 뽑힌다. 기술 코치보다는 더 넓은 시각에서 선수단을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이다. 다만 당시 염 감독의 선택에 불안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감독과 차기 감독 후보의 미묘한 전류가 흐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전례가 없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염 감독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2018년 가고시마 마무리캠프 당시 이에 대한 조심스러운 질문에, 염 감독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완이도 여기서 감독을 해야 하니까”라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단장 부임 이전까지 SK의 관점에서 철저히 외부인이었던 염 감독은 이 조직의 미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감독이 됐다고 해서 그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중간 다리라고 생각했다.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반대로 박 감독대행은 감독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항상 “이제 감독을 해야 할 나이가 되셨다”는 농담 섞인 질문에 물어보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진지하게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염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된다고 했다. 박 감독대행은 “감독님은 배울 것이 많으신 분이다. 그런 감독님 밑에서 최대한 많이 배우고 싶다. 오히려 감독님이 오래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관계 속에 두 지도자는 지금까지 어떠한 불협화음도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 감독대행이 감독의 임무를 대신할 날이 예상보다 빨리 왔다. 6월 6일 인천에서 열린 두산과 더블헤더 1경기에서 염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고, 곧바로 2경기부터 생각하지도 못한 ‘감독대행’의 타이틀을 달았다. 물론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는 하지만, 염 감독이 당분간은 현장에 돌아오지 못할 만큼 감독대행의 기간은 꽤 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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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박 감독대행의 요즘 심정은 아픔과 책임 사이, 그 어디쯤 혹은 둘 다이다. 수석코치는 감독을 보좌하는 것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가교 임무를 맡는다. 일일이 나설 수 없는 위치인 감독을 대신해 팀 분위기도 책임져야 한다. 박 감독대행은 자신이 그런 일을 잘 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인다. “감독님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고 매번 자책하는 이유다. 요즘도 염 감독 이야기만 나오면 울컥거린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실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이 아픔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9위까지 떨어진 팀 성적을 어떻게든 반전시켜야 한다. 일단 염 감독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고, 또 패배 속이 처진 팀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박 감독대행의 목표다. 어차피 야구는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두 지도자는 인연이 깊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같이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염 감독은 은퇴 후 현대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는 경완이 보너스를 챙겨주는 게 일이었다”고 껄껄 웃는 염 감독이다. 염 감독이 단장이 된 뒤로 박 감독대행은 그의 매뉴얼을 공부했고, 최근까지 감독과 수석으로 현장에서 호흡도 맞췄다. 박 감독대행도 “감독님의 매뉴얼을 잘 알고 있다. 최대한 염 감독의 틀 안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물론 상황이 매번 다른 만큼 경기 운영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염 감독의 시즌 구상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박 감독대행이다. 캠프 때 염 감독과 함께 젊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즐거워했던 박 감독대행은 최근 육성 매뉴얼에 따라 차근차근 젊은 선수들도 실험하고 있다. 염 감독이 돌아왔을 때 이질감은 없을 것이다. 아픔과 책임 사이의 대행은 그렇게 무게감을 버텨내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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