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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생생확대경] “원래 그런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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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몇 년전 노동분야를 담당하면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관한 취재를 할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테이블에 앉기보다는 ‘닥투(닥치고 투쟁)’라는 한 마디로 평가할 때였다.

민주노총이 대화보다는 투쟁에 더 익숙한 모습에 대해 노동계 인사들은 “민주노총은 원래 그래. 그들은 투쟁이라는 DNA가 내재되어 있어”라는 말로 일갈했다.

민주노총의 태동배경 등을 살펴보면 그 말이 선뜻 이해가 갔다. 민주노총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단체다. 민주노총의 뿌리인 이들 단체는 애초부터 한국노총의 노동운동방식을 비판하면서 대화와 교섭보다는 현장 시위와 투쟁, 파업 중심의 노동운동을 택했고 그것이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가 됐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안 좋은 언행을 보면서 “걔는 원래 그래”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언행을 했는지는 고려하기 보다는 특정 성향으로 치부해버리는 게 편해서다.

심리학 용어로는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 요인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행위자의 내적, 기질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와 다르지 않은 게 사실이다. 몽니, 어깃장, 투쟁, 폭력 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다닌다. 어쩌면 민주노총을 제외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민주노총의 태동 배경이나 노동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는 간과한 채 기본적 귀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히 민주노총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번번이 사회적 대화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자리를 비우거나 반대로 일관했다.

사회적 대화는 지난한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를 통해 같은 의견을 내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 노동계의 또 다른 축인 한국노총은 적어도 테이블에 앉아 지난 한 과정을 견디면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년째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외환위기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난에 가까운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손을 맞잡기로 했지만, 민주노총이 또 발목을 잡았다.

민주노총의 수장은 사회적 대타협에 적극적이지만 수적 우세를 앞세운 민주노총 내의 일부 세력은 ‘원래 그런 그들’과 같은 행동의 반복만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한국노총을 제치고 국내 제1의 노동단체로 자리매김했다. 과거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그들도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하다. 어쩌면 우리 일상이 바이러스와 함께해야 할지 모른다. 노동운동도 이제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린 원래 그래’라는 그들만의 프레임에 더이상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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