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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연합시론] 성착취범 송환불허 파문…관대한 성범죄 양형기준ㆍ관행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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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세계 최대의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 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법원의 결정을 놓고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8일 현재 3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청원이 올라온 지 딱 하루만이다. '웰컴 투 비디오' 회원 전수조사를 위해 특별 수사본부를 즉각 설치하라는 청원, 그리고 손 씨의 신상 공개와 재산몰수를 요구하는 청원에도 각각 수만 명과 수천 명이 참여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손 씨가 운영한 사이트에서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미국인들은 징역 5~15년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정작 손 씨는 1년 6개월 만에 풀려났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내면 국내 수사가 지장을 받아 아동ㆍ청소년 범죄에 대한 발본색원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송환 불허의 이유로 들었다. 사이트 회원들의 신원이 아직 극소수만 확인된 만큼 손 씨의 신병을 계속 확보해 관련 수사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주권 국가로서 형사 처벌 권한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리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범죄인 인도'는 외국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국내로 도피한 경우 범죄가 발생한 국가의 청구에 따라 범죄인을 체포해 해당 국가에 넘겨주는 절차이다. 손 씨가 범죄를 저지른 곳은 인터넷 공간이고, 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이번 범죄에 대해 미국보다는 한국이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손 씨가 아동ㆍ청소년 성 착취물 배포 혐의로 처벌을 받았지만 방대한 사건 규모와 비교해 수사 진척이 미진한 것도 사실이다. 손 씨는 2년 8개월 동안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세계 32개국, 약 128만명의 회원을 상대로 3천여개의 아동 성 착취물을 유통했다. 사이트에서 회원들끼리 공유한 성 착취 영상만도 무려 22만건에 달한다. 그런데 100만명이 넘는 회원 중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돼 벌금형이라도 받은 사람은 수백명에 불과할 정도로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논란의 근본적 배경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사기관과 법원은 성범죄에 대해 유난히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에서는 생후 6개월 된 영아까지 범죄의 표적으로 삼았을 정도로 반사회적이고 패륜적인 범죄가 일상적으로 자행됐다. 미국 같았으면 평생 교도소에서 나오지 못했을 법한 주범 손 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는 그나마 실형이 내려졌지만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법정형량은 5년 이상의 징역인데 법원은 소위 '정상을 참작해' 이런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성범죄는 피해자들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살인 못지않은 중범죄로 다뤄야 마땅한데도 가해자의 처지를 고려해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이다. 가해자 중심의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이런 점에서 손 씨의 미국 송환 불허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의 사법 시스템이 자초한 일이다. 최근 약 5천원 상당의 계란 한 판을 훔쳤다가 검찰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은 사례와 비교해봐도 손 씨의 처벌 수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수준과는 달리 법원의 판단이나 검ㆍ경의 수사 관행은 여전히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국회와 정부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법 조치에 나서야 한다. 사법당국도 관련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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